고기, 우유, 생선, 계란 안 먹으면 건강해진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09.06.28 19:05

[[오마이뉴스 이윤기 기자]'목숨 걸고 편식하는 세 남자 이야기'라는 한겨레신문 TV 프로그램 소개에 끌려 지난 금요일 밤에 MBC 스페셜을 시청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고기, 우유, 생선, 계란을 금기 식품으로 삼고 있는 세 남자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는 고기, 우유, 생선, 계란을 안 먹는 식생활로 말기 직장암에서 살아난 남자(송학운, 60세)이고, 다른 한 남자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신장 이식 수술 후에 면역억제제를 끊고도 멀쩡히 살아 있는 남자(이태근, 59세)입니다.

두 남자 모두 과거에 수술을 담당했던 대장암 전문의 김광연 박사와 40년 경력의 신장이식 권위자 박기일 박사로부터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심지어 박기일 박사는 다른 환자들이 절대로 따라하면 안 된다며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세 번째 주인공은 다른 두 남자에게 일어난 기적을 십분 이해하는 신경외과 의사 황성수(59세) 박사입니다. 자기 환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늘 고기, 생선, 우유, 계란을 안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염불 외듯이 말하는 의사입니다. 서양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보기 드물게 약보다 밥에 더 신경 쓰는 별난 의사입니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

통계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 등 생활습관병 환자가 천만 명(1130만명)을 넘어서고, 30대 이상 성인 3명중 1명은 생활 습관병 환자라고 합니다. 의료기술은 점점 좋아지는데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품은 그는 오랜 연구 끝에 생활습관병의 원인이 식습관과 관련이 있다는 단서를 발견하고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험을 해 봅니다.

91년부터 현미밥과 채식을 하면서 자기 몸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고, 1년간 본인 실험 후에 가족들을 거쳐 환자에게 적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그는 자기 환자들에게 '멸치'도 먹지 말라고 강조하는 철저한 '채식' 중심의 '식이'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뼈에는 멸치를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되요. 고기, 생선, 우유, 계란을 먹으면 뼈가 약해져요. 그건 틀림없어요. 우유를 먹으면 뼈에 좋다 하는 말은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단백질 섭취량이 많으면 여러 가지 병이 생깁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 필요합니다만 적게 필요합니다.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에는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어서 몸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많이 들어 있음으로 해롭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고단백 식품이 아니라 과단백 식품입니다." 그는 단백질, 특히 동물성 단백질 과다 섭취가 여러 가지 병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고혈압, 당뇨병, 암 모두 단백질 과다 섭취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이 세 가지 암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암인데, 모두 고기, 생선, 계란, 우유하고 관계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뇌혈관병이라고 중풍, 심장 혈관병인 협심증, 심근 경색증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환자들은 과다한 단백질 섭취를 줄이면 눈에 띄는 치료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방송에 나온 그의 환자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완전히 끊는 식이치료를 통해 평생 동안 먹어오던 고혈압, 당뇨약으로부터 벗어나 건강을 회복합니다.

"땀 안 나게 하려면 약을 쓸 것이 아니라 몸을 시원한 쪽으로 옮겨가버리면 되지요. 혈압도 마찬가지입니다. 혈관이 좁아지면 혈압이 올라가거든요. 혈관을 넓혀 줘 버리면 혈압은 아주 쉽게 내려갑니다. 땀을 약으로 말리면 안 되듯이 올라 간 혈압을 약으로 내리는 것은 많은 해가 되지요."




혈압약 필요 없다, 현미밥이 약이다

현미밥에 오이, 연근, 잡채, 고들빼기김치, 국에도 멸치 한 마리 들어가지 않은 된장국이 환자들을 위한 식사입니다. 황 박사는 "이렇게 먹으면 동물성 식품이 좁혀놓은 혈관을 현미밥이 넓혀준다"고 합니다. 현미밥은 단백질 칼로리 비율이 8%로 막 태어난 아기가 먹는 엄마젖 단백질 비율 7%보다 높기 때문에 현미밥만 먹어도 단백질 섭취는 충분하다고 합니다.

석 달째 황박사의 식이치료를 받고 있는 이우연(83세) 할머니는 뇌경색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하여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 할머니는 치료 20여일 만에 정상혈압으로 돌아왔고, 12년간 먹던 혈압약을 끊고 지금은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합니다.

40년간 고혈압과 당뇨를 앓아온 남노귀(84) 할머니는 아예 걷지도 못하셨지만, 입원 두 달 만에 당뇨수치도 정상으로 혈압도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방송에 황 박사 몰래 혈압약을 숨겼다가 들켰던 신옥희(80세) 할머니 역시 4년간 먹던 혈압약, 당뇨약 다 뺏기고 현미밥에 올인한 덕분에 곧 퇴원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팔십을 훌쩍 넘긴 세 할머니 모두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 당뇨약을 끊고 건강을 회복한 기적 같은 체험을 한 분들입니다. 황박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식이치료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빨리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음식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혈압약을 드시고 있는 상태에서 130~140이 나와요, 이래서 혈압약을 끊으면 입원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까지 150~160까지 혈압이 올라가잖아요. 혈압약을 끊으면 혈압이 올라가지요.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그 다음부터 며칠 지나면서 식이요법의 효과가 나타나지요. 혈압이 서서히 내려가지요." 황 박사는 고기, 생선, 우유, 계란을 끊고 현미밥과 채식을 중심으로 하는 식이치료를 하면 불과 일주일만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의사도 못 고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따르는 '편식'으로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살기 위해 편식한 송학운씨 부인 김옥경씨가 준비한 채식 밥상


ⓒ MBC


목숨 걸고 편식했더니 말기 대장암이 사라졌다

대장암에 걸렸다 기적처럼 살아난 송학운씨는 유도선수 출신 체육교사였다고 합니다. 건강만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고 합니다. 기운을 잘 쓰려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야채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92년 5월 직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직장, 대장 두 곳에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어 수술을 통해 대장 일부와 직장을 잘라냈다고 합니다. 8시간의 대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수술 후 조직검사에서 임파선에 암이 전이된 것으로 확인되었고, 담당의사는 제발 확률이 70%라고 하였답니다.

수술 후에도 고통은 그치지 않았고 항암치료를 받는다 해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답니다. 첫 번째 항암치료를 받은 후 부부는 무모한 도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지금까지 먹던 것과는 정반대로 100% 채식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이거 먹으면 악화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이거 먹으면 계란이나 우유, 육류, 생선 먹는 것 보다 악화는 안 될 거라는 자신감은 좀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나을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요. 어떻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병원에서도 얼마 못 살 거라고 했는데." 처음엔 익히지도 않은 날 음식을 100일 동안 먹었는데 몸무게가 30kg이나 빠졌다고 합니다. 우연히 한 요양원 자연식을 체험해보고 자신의 몸에 딱 맞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요양원에서 배운 자연식을 먹고 열흘 만에 정상적인 변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젠 살았다고 하는 마음이 들었다더군요.

요양원 음식은 요리하기 좋아하던 아내 김옥경씨의 상상력을 키웠다고 합니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맛도 좋고 몸에도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먹어볼 수는 없었지만 TV 프로그램에 나온 그녀의 요리는 일류호텔 뷔페식당 못지않은 화려함을 뽐내더군요.

"순식물성 재료가 피와 세포를 맑게 해줍니다. 음식은 먹는 즐거움 그 이상입니다. 식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우리 인체는 큰일을 해낼 수 있게끔 되어 있어요. 내가 참 고기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이렇게 변한 것 보면 희한하지.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
송학운씨의 암은 재발하지 않았고, 임파선에 전이 되었던 암세포까지 몸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암이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17년 전 대장암 수술을 맡았던 김광연 박사는 송학운씨가 살아있다는 이야기에 살기 힘든 사람이 살았다고 깜짝 놀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있다면, 결국 '식이' 치료였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 하는 이태근씨


ⓒ MBC


세 끼 밥을 다 먹는 것은 자기 몸에 대한 학대(?)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이식 수술 이외에는 방법이 없고 다행히 수술에 성공하여도 남의 신장을 이식하면 거부반응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것이 의학적 정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81년 3월에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이태근씨는 96년부터 약을 끊고 지금까지도 멀쩡하게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의 수술을 맡았던 40년 경력의 신장이식 권위자 박기일 박사는 방송 제작진에게 꼭 한 번 불러서 확인해보고 싶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방송에 나온 이태근씨는 황성수 박사나 송학운씨처럼 채식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엄청난 농사일을 하면서도 하루 한 끼만 먹고도 건강하게 사는 또 다른 기적 같은 삶을 보여줍니다. 새벽부터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일을 하다가 오후 3시가 다 되어 김치, 된장, 현미밥 한 그릇으로 하루치 식사를 모두 마칩니다.

그는, 지난 20년간 매일 이렇게 먹고도 누가 보아도 도저히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라고는 느껴지지 않은 탄탄한 근육질 몸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몸이 비어 있으면 정말 꿀맛이지요." 배가 고플 때, 몸이 비어 있을 때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음식 철학입니다.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것은 자기 몸에 대한 학대, 몸과 마음에 대한 학대라고 생각해요. 세 끼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아요. 한 끼로도 충분하니까" "단순히 사과라는 음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고 이게 우주고 자연이지요. 사과나 나나 똑 같은 것이지요. 하나도 차이가 없어요. 먹고 먹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냥 하나가 되는 것이에요. 사실은..." "먹는 것이 자기 몸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등한시 하는 것 같아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덕분에 자연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지요." 40년 경력 신장이식 권위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1981년 신장 수술 후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온갖 잔병치레를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건강해져야겠다는 일념으로 300권이 넘는 건강 관련 책을 읽고 몸에 좋다는 운동은 다 해본 끝에 지금의 삶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새벽에 일어나 현미 깁밥 도시락을 싸다니고, 출장을 가더라도 생쌀, 생고구마 싸가지고 가서 그것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내내 고혈압에 시달리던 몸이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몸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건강에 자신이 생기자 면역억제제를 끊는 시도를 하였고, 5년에 걸쳐서 서서히 약을 줄여나가다 마침내 완전히 약을 끊었다고 합니다.

28년 전에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이태근씨 몸을 검사해 보고 "콩팥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군요. 소변, 혈액 검사, CT촬영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방송에서 "2300명 수술해서 처음 있는 일이며, 약 안 먹은 사람 모두 거부 반응 생겨서 신장 다 망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방송 끝부분에 이 세 남자가 한 자리에 모여 각자가 먹던 대로 준비해 온 도시락을 열어놓고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장 소박한 이태근씨 밥상에서부터 화려하고 아름다운 송학운씨네 도시락, 그리고 생식을 하는 황성수 박사 도시락까지 모두 고기, 생선, 우유, 계란이 없는 식사입니다.

고기, 생선, 우유, 계란을 절대 먹지 않는 완벽한 편식이 사람을 살리는 밥상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으면 반드시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에 걸려도 식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어떤 약을 먹어도 결코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 년 동안 < 오마이뉴스 > 서평기사로 채식과 건강 관련 책 20여권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MBC 스페셜은 방송 제목 그대로 제가 그동안 소개한 20여권이 넘는 채식, 건강 관련 책의 엑기스만 모아놓은 제대로 된 '스페셜' 방송이었습니다.

책보다 쉬운 'TV 프로그램 인터넷 다시 보기'가 지구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바른 식습관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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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11 12:33 ㅣ최종 업데이트 09.06.11 14:32 오연호 (oyh)
지난 2007년 9월 16일 인터뷰 중인 노무현 대통령.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

2000년 3월 22일 아침 8시, 부산 코모도 호텔 커피숍.

나는 점퍼차림으로 나타난 노무현 민주당 의원과 마주앉았다. 서울 종로의 지역구 의원이던 그는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겨 선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일을 하고 있었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하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 바쁘시지요?

"전쟁터입니다. 하루 하루가."

노무현 의원은 솔직했다. 그는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는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왜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하느냐니까 이렇게 답했다.

"내가 차기에 대해 의욕을 갖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과 생산적 복지정책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지역화합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여야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김근태 의원과 나 두 사람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이란 참으로 복잡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골치 아픈 자리일 텐데요,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 노무현 의원이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그게 뭘까요?"하고 되묻다가 이렇게 답했다.

"판단력… 역사적 안목을 기르는 일입니다."

포부는 그렇게 컸다. 하지만 당시 그가 대통령으로 나서면 그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노무현계 현역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통령 준비 "역사적 안목 기르고 있다"

그렇다면 그때 민주당 국회의원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누구를 거울 삼아 '역사적 안목'을 기르고 있었을까? 해외 인물로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었다고 정치인 노무현은 나중에 밝혔다. 그렇다면 국내 인물 가운데는? 아마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2006년 2월 26일 출입기자들과 취임 3주년 기념 등산을 한 후점심식사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사적 안목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난 1971년 DJ가 내놓은 4대국 보장론이나 통일정책은 아주 파격적입니다. 우리는 DJ를 최근의 정치인으로 보지만 그가 정치권에 등장해서 1970년에 대선후보가 되어 1971년 대선 때 제시했던 정책방향을 그 시대 속에서 보면 아주 천재적인 것들입니다. 그가 당시의 세계정세를 나름대로 읽고 내놓은 외교 통일정책들을 보면 그가 매우 뛰어난 안목을 가진 정치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평가는 공부를 하지 않고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통령에 필요한 역사적 안목을 갖추기 위해 197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정치인 김대중의 행적을 공부한 것이다.

내가 2007년 10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그 시기의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했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오열했다. 정치인 노무현과 영영 이별하는 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복궁에서 열린 국민장에 참석해 먼저 떠나버린 후배 대통령 영정 앞에 헌화했다. 그리고 권양숙씨 등 유족의 손을 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DJ가 대중 앞에서 펑펑 운 것은 1987년 광주 방문 때 5.18 국립묘지(당시는 망월동 공동묘지)를 참배해 통한의 눈물을 흘린 이후 처음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날 이렇게 심정을 밝혔다.

"평생 민주화 동지를 잃었고, 민주정권 10년을 같이했던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입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 그 표현은 그냥 예의 차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소에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나라당이 그 두 정치인이 만들어낸 정권에 대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 묶음으로 보듯이 그들은 한국정치의 한 산맥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보수언론으로부터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자주 들었던 노무현에게 바로 전임이었던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은 어떤 존재였을까?

지난달 29일 오전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치의 천재, 정책의 천재" 김대중의 천재성 탐구

- 이 점은 예전부터 궁금했는데요, 노무현 대통령께 김대중 대통령은 어떤 존재인가요, 믿음직한 큰형님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질투의 대상일 수도 있겠는데요.

동석했던 황방열 기자가 물었다.

"그분은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완전한 정치인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 시기에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죠.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분을 평가할 때 그 점을 우리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든 그 기본적인 전제를 먼저 우리가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와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르다고 했다.

"아까 곳곳에 그분의 발자취가 남아있다고 내가 말했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스스로 비전, 전략, 정책에서 역시 탁월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강대강 주변의 학자들이 적어준 것이 아니라, 머리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입니다. 한 수준을 뛰어넘는 거죠. 머리를 빌려서 하는 지도자와는 다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가치, 전략, 정책 모두 탁월한 정치인입니다."

노 대통령은 그 청와대 인터뷰보다 3개월 전에 있었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 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DJ는 천재"라는 표현까지 썼다. 2006년 2월 26일 청와대 출입기자와 취임 3주년 기념 오찬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천재성 탐구"를 권했다.

"내가 그동안 부품소재산업에 대해 많이 떠들었는데 알고 보니 지난 2001년에 DJ가 법까지 다 만들어놓았더군요. 손댈 만한 것은 대개 한 번씩 손질을 해두었더군요. DJ 시절 일어났던 시스템의 정리나 정책 시스템의 과정들을 한번 연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다른 DJ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의 천재 DJ가 아니라 정책에 있어서도 천재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양반은 총체적인 능력, 역량이 천재급 정치인입니다."

김대중 지지자들은 그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그날 오찬에서 웃으면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당 시절) 당내에서 DJ는 '교사(敎師) 정치인'이었습니다. 대정부 질문을 앞둔 의원들을 다 모아놓고 강연을 했어요. 내용은 물론 질문 기법까지 세세하게 가르쳤습니다."

"87년 양김분열 상처 내가 꿰매보려 했지만..."

탁월한 대통령, 탁월한 정치인, 정치의 천재이자 정책의 천재.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노 대통령의평가는 그렇게 여러 자리에서 주저없이 나왔다. 그에 대한 인물탐구, 공부가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일부 지역에서는 감정과 선입견에 의해 평가를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보통 그분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분에 대한 감정을 먼저 앞세웁니다. 옛날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 만들어 놓은, 특히 <조선일보>가 만들어 놓은 그런 선입견을 먼저 내세웁니다. 그래서 '빨갱이, 거짓말쟁이 아니냐' 그러는 거죠. 우리 고향에서는 그분을 빨갱이, 거짓말쟁이, 전라도, 이 세 가지를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그렇게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큰 틀에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일부 386세대가 그분을 볼 때도 반칙이 많지 않았느냐, 정치적인 술수라든지, 권위주의라든지 그런 것들이 있지 않았느냐고 볼 수도 있지만 한두 가지 상황들, 몇몇 실책들만을 가지고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공정하게 평가를 해야지요."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시대의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분도 사람입니다. 역사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열성적 지지자도 많지만) 권위주의적이라고, 권모술수를 부린다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분이 (정계은퇴 선언 번복 등의 경우처럼) 그렇게 욕먹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정권교체도 없었고 대통령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섭섭한 대목은 없었을까? 그는 1987년 양김씨(김대중-김영삼)의 분열, 후보단일화 실패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하나, 지금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은 1987년 대선에서 YS하고 후보단일화에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집권당인 노태우 후보에) 이길 방법이 없으면 그랬어야 하는 것인데, 타협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는 덧붙였다.

"그때 생긴 일 때문에 (영호남의 민주화세력이) 분열됐고, 나는 그 분열의 상처를 한 번 꿰매 보려고 내 나름대로 정치에서 필사적인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공 못하고 있습니다. 나한테는 그분의 공(功)과(過) 모두 거울일 뿐입니다."

"국민의 정부 덕분에 열매 따고 있다"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폐회 선언 직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그렇다면 왜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을까? 참여정부가 집권 초에 국민의 정부의 대북송금 건을 특검으로 수사할 때만 해도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긴장감이 팽팽했었는데….

아마도 한 팀이 되어 역사의 이어달리기를 함께 하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앞 주자의 성과가 곧 자신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국가 운영의 전략적 관점이랄까, 국가 운영의 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전략적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국민의 정부 때부터입니다. 그 전 김영삼 정부 때는, 물론 제도 개혁도 일부 있었지만, 주로 단발적 개혁이 많았고 정부의 시스템 자체를 놓고 개혁을 한 것은 없었어요. 그러니까 김대중 대통령의, 뭐랄까, 사고의 깊이라고 할까요? 그 사고력의 수준만큼 국가 운영 시스템이 개혁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정부에 와서는 내가 또 그 쪽에 취미가 있으니까 정부 혁신을 미시적인 부분까지 5년 내내 진행했지요."

노무현 대통령은 이어달리기 게임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했다. 참여정부평가포럼에서도 그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국민의 정부 덕분에 참여정부가 열매를 따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성과가 성장률로 나타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살고 있는 반도체, 휴대폰, 그밖에 여러 가지 수준 높은 기술들은 우리 정부에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난해 수출 3000억 불을 초과 달성한 것도 다 이전 정부에서 준비하고 성장시켜온 것들을, 저희 정부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 때문에 진보의 정책이 채택될 수 있었고 라면 사재기가 없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국가 발전전략의 전환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설치 등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복지정책의 토대가 구축됐습니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국민의 정부가 진보의 정책을 채택한 것이고요, 그 국민의 정부가 시장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시장경제와 진보정책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주의 전략, 포용정책을 통해 안정과 활력을 조화시켰지요. 그래서 라면 사재기, 방독면 사재기와 같은 얘기는 국민의 정부 이래 지금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노 대통령은 아예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똑같다"고까지 했다.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참여정부는 역시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국민의 정부하고 똑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농담을 해서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좀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역사 이어달리기에 질투는 없다

인간인 이상 질투를 느낄 만할 것이다. 보수언론으로부터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밥먹듯 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고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어찌 질투심이 없겠는가? 형제간에도 그런 것이 있을진대.

그러나 전임 대통령을 평가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표정과 말투에서 나는 그것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질투보다 공부를 택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퇴임 직전에도 계속 대통령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2000년대권도전선언 인터뷰를 하기 위해 부산의 한 호텔에서 마주앉았을 때 그가 대통령을 하기 위해 "역사적 안목을 기르고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역사적 안목을 갖춘 두 사람은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두 정치인은 한 팀이었다. 역사의 이어달리기에서 자기 시대에 다가온 책무와 도전을 회피하지 않았다. 국민의 염원을 안고 한 방향으로 달렸다. 김대중은 정권교체,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노무현은 특권 없는 사회, 지역주의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달렸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한 길 위에서였다. 두 사람은 역사와 대결에서 한 몸이었다.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의 죽음을 접하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바보 노무현의 영결식장에서 추도사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 '똑똑한 김대중'의 한평생에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자신이 뭔가 대중 앞에 글을 써서 발표를 하려고 하는데 '자격미달'이라고 거절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영정 뒤에 잠들어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가 그토록 "당대의 가장 탁월한 정치인"이라고 칭송했던 이가 그에 대한 추도사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뭐라 생각했을까?

이명박 정권은 그런 식이다. 한 전직 대통령이 정치보복 논란 속에 저세상으로 갔는데, 또 다른 노(老) 전직 대통령에게는 추도사도 못하게 하는 모욕을 안겨준다. 왜 그런 무리수를 둘까? 김대중-노무현 이어달리기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그들은 모르나보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역사의 이어달리기, 그 길에 함께하는 이들은 두 전직 대통령만이 아님을.

노무현은 김대중을 공부했다. 이제 살아남은 자 누군가가 노무현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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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할 때는 절대 빨리 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적당한 속도로 호흡에 맞추어 하라고 합니다.

무릎을 댈 때는 절대 충격을 최소화하라고 하였습니다.

무릎관절을 보호해야한다고 합니다.

방석이나 담요를 바닥에 깔고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때 발가락이 완전히 꺾여야 합니다.

이 때 왼 발이 오른쪽 발 위로 포개집니다.

무릎의 반동으로 일어납니다.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에 들어가셔서 다시보기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펌-지수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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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나란 무엇인가?

산스크리트어로
어근 as는 앉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가수트라에서는
아사나(asana)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sthira sukham asanam
(아사나는 견고하고, 안정되고(sthira),
기쁘고,편안하고,쉬운(sukham)것이다."

즉, 명상을 하기 위한 '안정되고
편안히 앉는 방법(坐法)'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견고하고 편안함은
강유(剛柔)의 상호 조화를 말하는 것으로

육체적으로는 바른 자세를 취하기 위한
적절한 긴장을 통해 확고부동해지는 것과
불필요한 긴장을 모두 이완시켜 편안해 지는 것
상호조화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외부의 상념에 영향을 받지 않으나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아 안락할 수 있을 때

이것이 다시 靜中動의 경계에 들어
음과 양의 조화와 균형을 되찾고
명상이 일어나 내외가 통합될 수 있는 상태를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에 후대의 하타요가(hatha yoga)의 수행자들은
아사나를 '자세'의 의미로 사용했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육체적 자세들이
몸속에 흐르는 프라나(氣,에너지)를 활성화시키고
방향을 조절하며 근육과 뼈를 단련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자세들은 프라나를 통해
몸속의 에너지통로인 나디(nadi 경혈)와
척주를 따라 존재하는 에너지센터인
차크라(chakra)들을 조절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타요가 쁘라디삐까에서 볼 수 있듯
마음과 프라나는 서로 연결 되어 있음을 발견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프라나를 조절함으로서
마음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사나라는 것은 결국
육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프라나와 마음
그리고 더 높은 상태의 각성을 위한 필수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타요가쁘라디삐까(hathayogapradipika)에서는
아사나 수행을 가장 우선시하게 되었다.

요가경전 게란다상히타에서는
'체위법의 종류는 생물의 수만큼 많고
쉬바신이 설한 아사나는 8천4백만가지가 있다'고 묘사한다.

그것들 중에
84가지의 가장 유용한 것들만이
현재 상세히 기술되고 있다.

현자들은 먼저 동물들이 그들의 환경과
그들 자신의 몸을 어떻게 조화시켜 가는가를 관찰한 후
이미지(象)와 모습(形)을 취한 자세(아사나)를 만들어 자세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명상으로 접근하기 위한 강한 육체를 만들려고 했다.

다음으로 인간의 태아
전설적인 영웅,현인 신의 이름으로 자세를 만들었다.

이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기상과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장점들을 닮기 위한 것인데
이것은 심리적인 감정이입의 효과를 지니고 있어
그들과의 직접적인 공감(sympathy)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신의 이름으로 아사나를 만든 부분은
첫째로 인도인들이 지닌 종교적 정서가 녹아나
신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감정이입, 혹은 신아일체적인 사고의 동기가 있고
두번째로 그 아사나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정서가 녹아있다.

실제로, 게란다 상히타나, 쉬바상히타 등에서는
쉬바신을 하타요가의 조신祖神으로 삼는데
이것은 이러한 정서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요가란 신이 알려준 것으로
수행을 통해 그들이 신성의 영역에 이르렀던 것처럼
요가를 통해 영적인 진보를 꿈꾸었던 것이 인도의 요기들이 지닌 바램 이었다.

요기들은 아사나를 통해 지고의 우주의 정신인 브라만에 이르러
그와 하나가 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에 이르고자 하였는데
아사나에 브라만의 이름을 붙인 것은 진아라고 불리는
궁극적 자아의 현현이라는 요기들의 궁극적인 목표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요가의 아사나는 결국 그 궁극에서는 음과 양을 하나로 하여
혹은 사트바 라자스 타마스 의 세가지 구나의 조화를 이루어
선천先天의 미분할된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하나이지만

세세하게 나누어볼 때
요가경전의 두 가지 조류처럼 아사나는 크게
하타요가의 수행자들이 육체를 단련하고 정화하기 위해 취하는
역동적 아사나와 라자요가나 불교 등의 명상수행을 하는 이들이 취하는
명상을 위한 자세인 정적인 아사나의 둘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역동적인 아사나는 척추와 골격을 바로잡아주고
근육을 단련하고, 몸을 유연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프라나의 순환을 돕게 된다.

또한, 피부와 근육들을 부드럽게 하고, 폐를 튼튼히 하며
소화기계통을 비롯 여러 내장기관을 활성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아사나를 통한 육체의 단련이나
육체의 아름다움에 이루고자 한다면
역동적 아사나에 좀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아사나의 진정한 꽃은 정적인 아사나로.
한 자세로 오랫동안 움직임 없이
긴장과 이완의 조화를 유지하는 유지하는 자세라 볼 수 있는데
주로 조식법(pranayama)이나 명상법을 통해
정신적인 몸이라 불리는 vijananamaya kosa와
에너지적인 몸이라 불리는 pranayama kosa을 활성화시키고
정묘하게 만들어 그곳에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적인 아사나를 취하게 되면
내부기관과 분비샘 그리고 근육들이 부드럽게 마사지되고
명상이 일어나 뇌파가 점차 낮아지게 되면서
부교감신경에 영향을 주어 온몸의 신경계통이 이완되고
긴장이 완화되어 보다 조화로운 내면에 이를수 있게 됩니다.

아사나는 또한 몸에 프라나가 잘 흐르도록 하여
혈관속에 있는 노폐물이나 근육 사이에 있는 피로물질.
프라나의 흐름은 막는 탁한 프라나를 정화시키는 행법이기도 하다.

프라나가 흐르게 될 때, 에텔체 혹은 프라나마야 코샤가 활성화되고
그것이 물질계의 육체에 영향을 미쳐 혈관 속에 막혀있는 노폐물이나
근육 사이에 있는 피로물질이 제거되기 시작하여 실행하기 어렵던 아사나도
쉽게 할 수 있게 되고, 몸이 유연하게 되어 아사나는 확고해질 수 있고
동시에 내면과 외면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아사나의 수행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때
호흡과 신진대사는 느려지고 고요해집니다.

또한 산소소비량 역시 줄어드는데
아사나의 체위들은 에너지의 소비량이 줄게 되어
이화작용이 억제되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신경계통과 분비샘들 내장기관 등에 자극이 일어나
동화작용을 촉진시키게 되는데 이로서 에너지는 보다 효과적으로 충전되고
보다 활력있고 정력적인 상태가 된다.

결국 이러한 아사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체가 지닌 근원적인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선천진일지기先天眞一之氣라고도 불리우는
쿤달리니 샥티(kundalina sakti)를 깨우는데 있다.

아사나의 수행이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때
프라나의 센터인 차크라를 자극하기 시작하여
쿤달리니 에너지를 몸속에 고루 분배 시킬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인체의 슈슘나 나디를 흐를때 이때 비로소
육체와 프라나, 정신의 통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心氣身. 하위차원의 네 개 신체인 육체, 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등이 하나로 응결될 수 있게 된다.

이때 몸과 마음과 에너지가 서로 하나로 통합되어
심신의 진정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때에 이르를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모든 것과 하나가 된 듯한 전체성의 회복이며,
동양에서는 만물일체萬物一體라고도 불리우는 Samadhi 이다.

하타요가의 아사나는 결국 음(tha)과 양(ha)의 에너지를
조화롭게, 균형있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깃들고
다시 고요함속에 움직임이 일어나는 動中靜 靜中動의 원리처럼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사나의 목적이다.

아사나는 육체와 마음을 통합하고
인간은 육체를 넘어선 에너지체 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靑鶴 울리싸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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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 희미한 내모습 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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