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사상과 구조론
지난 겨울 퇴계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썼던 사실을 기억하실지. ‘퇴계혁명’이라는 책(김호태 저)을 권한 분이 있어서였는데, 그 분이 필자에게 책을 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략 살펴보았다.
책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자는 10년 이상 퇴계를 연구했나본데.. 내가 써도 그보다 낫겠다 싶으니... 퇴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없고 기존의 비판을 재반박하는 형식.. 알맹이 없는 거다. 자기 주장을 내놓아야지.
남의 주장, 남의 사상, 남의 글 가지고 어쩌구 하며.. 가공무역식으로 중간에서 끼워팔기 해서 부가가치 창출하는 짓은 정말이지.. 선비의 자세가 아니다. 작가 자신의 고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퇴계 역시 주자의 설을 베껴서.. 남의 사상 가지고 설레발이 치는.. 퇴계를 옹호하는 저자 역시..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가 남의 나라, 남의 사상에 푹 빠져 있는 한국의 강단학계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
저자 본인도 남의 걸 팔면서 말이다! 나? 내게는 구조론이 있다. 이건 수입품이 아니고 기성품이 아니다. 복제품 아니고, 번역한거 아니고, 주석한거 아니다. 백퍼센트 내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다.
10년 간 대한민국 땅을 스무바퀴 이상 걸으면서 내 배 아파서, 내 안에서 낳은 거다. 이문열이 삼국지 저자로 학생들 착각하게 만들어 지하의 나관중 저작권료 소송걸게 만드는 그런거 아니다. 근본이 다르다.
이제는 정말이지 고유한 우리사상, 우리철학, 우리가치, 우리기준, 우리저울, 우리권리, 우리양식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골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틈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천하’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편주의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천하’를 보는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된다. 그걸 해낸 사람이 율곡. 그러니 그만큼 율곡의 사상은 성리학의 본질에서 멀어졌다. 당연하다. 그런데 저자는 그걸 비판한다.
성리학이 이(理)를 숭상하는 학문인데 기(氣)를 주장하니 율곡은 성기학이 아니냐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주자의 사상도 공자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
퇴계는 그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사상가일 수가 없다. 단지 인간심리를 좀 아는.. 처세술의 달인.. 그의 경(敬) 개념이 처세술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정적으로 유교를 종교화 시켜 놓은 장본인.
진리탐구의 결실이 아니라 인간통제술의 발달. 하여간 퇴계 덕분에 권력자는 편하게 되었다. 퇴계 때문에 인간들이 고분고분해졌으니. 그의 경 사상은 한마디로 ‘고분고분하게 말 좀 들어라’는 거.
퇴계를 비판하자면 한이 없고.. 구조론으로 돌아가서. 필자에게 책을 권한 분이..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구조론적 접근에 관심이 있었다 치고.. 구조론으로 본 사단칠정론에 관심이 있었다 치고.
이런 이야기 하는 이유는 저자가 ‘사단칠정’을 모르는 것 같아서다. 하긴 누군들 알겠냐마는. 그렇다면 그 동양학의 뿌리를 한 번 캐보자는 거다. 동양정신의 발원지를 거슬러올라가서.
한강은 검룡소에서 시작되고 낙동강은 황지에서 시작된다. 유교는? 대한민국의 모든 산은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지리산에서 마친다. 공자는? 발원지가 없다. 형이상학이 없다.
학문의 발원지가 형이상학이다. 구조론에서 다루는 존재론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존재하기 위하여서는 ‘소속,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가 차례대로 있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없으면 존재가 부재다.
포지션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학문을 유도하는 절차를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학문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말하면 안되고.. 명확한 출처를 제시해야 하므로.. 형이상학의 자리에 대신 가져다 둔 것이 주역이다.
말하자면.. 공자의 예(禮) 개념이 ‘인류문명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이라면 그 자동차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공자는 그것을 논하지 않고 저자불명의 주역을 추천했다. 말하자면 공자철학의 근거는 주역인 거다.
그런데 주역은 점 치는 책이다. 이건 넌센스다. 황당하다. 직접 읽어보면 알 거다. 결론적으로 공자의 모든 사상은 근거가 없다. 공자 자신이 근거를 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되면 학문이 가지를 쳐나가지 못한다.
자동차운전학원은 있는데 자동차는 없다? 공자는 자동차도 없이 자동차운전교습학원을 운영하는 자란 말인가? 그래서 보강작업이 시작되는데. 첫 아이디어는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이라 볼 수 있다.
하늘의 원형이정이 인간의 인의예지로 전개된다. 하늘과 인간은 닮는다. 이 점은 ‘패턴’에서 시작하는 구조론과 닮았다. 구조론은 닮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패턴에서 로직을 찾고 메커니즘을 찾고 패러다임을 찾는다.
주자가 이를 발전시켜 이(理)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불교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바 된다. 그러니 금강산에서 1년간 불교를 공부한 율곡이 뭔가를 아는 거다. 또 주자학이 왕양명의 심학으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리(理)는 결이다. 리는 옥을 가공하는 장인이 원석의 결을 따라 가공한데서 나온 개념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목리(木理)라 하는 사실로 알 수 있다. 결은 길이다. 길은 도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도학이다.
길에는 네거리가 있다. 그것이 심이다. 심은 core다. 그런데 퇴계 아저씨는 엉터리 번역의 옛날 천자문을 공부하다보니 심을 마음으로 잘못 이해했다. 천자문의 한자뜻풀이 중 다수가 엉터리라는 사실 알아야 한다.
심은 볼펜심과 같은 거다. 복숭아 속에는 씨앗이 있다. 그게 핵이다. 지구 속에도 핵이 있고 원자 속에도 핵이 있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 핵이 있다. 심 1과 날 2다. 핵에서 날로 가지치는 것이 리(理)다.
심(心)을 마음심으로 번역하지 말고 core로 이해해야 한다. 왕양명의 심즉리는 정확한 이해다. 구조론에서는 심 1과 날 2로 ┻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심(心)이고 옆으로 뻗은 것이 리(理)다.
어떤 존재든 내부에 심이 있어야 하며, 심을 가진 존재를 외부에서 타격하면 저절로 박리되어 리가 생겨난다. 심과 리는 바퀴의 축을 이루는 굴대와 사방으로 뻗은 바퀴살처럼 항상 같이 가는 거다.
이심전심은 이 core에서 저 core로 통한다는 거다. 왜 심에서 심으로 통할까? 밀도가 같아야 반응하기 때문이다. 심과 날은 밀도차이가 있다. 밀도가 같은 것끼리만 반응하므로 소리가 전달된다.
무선전화가 연결되고 안테나가 작동한다. 주파수가 같은 것만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림과 떨림이 있고 감응이 있다. 공명이 있다. 심은 소통의 중심이다. 심의 밀도가 다르면 공명하지 않는다.
주역의 핵심 개념이 무엇인가? 청나라 강희제는 주역의 원리로 중국을 통치하여 태평시절을 열었다는데 강희제 본인의 표현을 빌면 ‘밸런스 원리’다. 이 부분은 구조론과 닮아 있다. 밸런스가 포지션을 낳는다.
문제는 주역의 원리와 퇴계사상이 일치하는가이다. 아니로소이다. 퇴계는 주역의 정신에서 벗어났다. 그는 리(理)와 기(氣)를 차별하여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통치자와 민중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져 조선은 망했다.
주역의 밸런스 원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늘의 원형이정이 인간의 인의예지에 반영된다. 무엇인가? 심즉리다. core에서 날로 전개한다. 그것은 도다. 도는 길이다. 길은 결이다. 결은 리(理)다.
원형이정은 사계절로 나타난다. 사계절은 시간의 길(道)이다. 그래서 태극기에는 건리감곤 네 괘가 있다. 음양이라는 core에서 4괘라는 날로 전개한다. 퇴계는 이 패턴을 사단칠정 개념에 적용한다.
사단이라는 이가 칠정이라는 기를 지배한다는 논리. 그러나 이는 국어공부를 게을리해서 일어난 착각에 불과하다. 이와 기가 무엇이 다른가? 간단히 말하면 이는 수학이고 기는 과학이다.
수학은 논리게임이다. ‘A면 B다’의 규칙. 과학은 거기에 에너지를 태운 것이다. 이라는 자동차에 운전수가 올라타면 기가 된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의 공통된 규칙은? 두 팀으로 나누어 공으로 경기하기.
이렇게 공통점만 뽑아놓은 것이 리. 기는? 구체적인 스포츠 종목이다. 야구라면 방망이도 필요하고, 배구라면 네트도 필요하고, 축구라면 골대도 필요하다. 이에 에너지를 올려태우면 기가 된다.
이라는 자동차에 승객을 태우면 기가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왜 그게 사단칠정론이 되느냐다. 근대의 개념으로 말하면 리는 합리성이다. 합리주의를 품으면 인, 공유하면 의, 실천하면 예, 파악하면 지다.
말하자면 인의예지 사단은 억지로 주역의 4괘에 끼워맞춘 거고, 억지로 원형이정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시간의 길에 맞춘 거고, 그러니까 글자수 맞추기 게임이고, 근대개념으로는 그냥 ‘이성’이다.
인의예지가 있는게 아니고, 그냥 이성이 있는데, 그 이성을 품고(인), 그 이성을 공유하고(의), 그 이성을 실천하고(예) 그 이성을 파악하며(지). 넷으로 짜맞춘 것은 중국사람들이 원래 4언절구를 좋아해서다.
천자문도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하며 4자로 맞춰놓았다. 7정은 무엇인가? 존재론은 소속,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로 전개한다. 세번째 파트너에서 짝을 짓는다.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
짝을 지으면 대상이 있으므로, 구조론의 세번째 가역원리에 따라 (반복, 연속, 가역, 분할, 순환)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결정한다. 이 경우 선악, 플러스 마이너스는 공존하게 된다.
희노애락애오욕에서 애라면 사랑이다.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사랑때문에 일어나는가? 사랑이 선하지 않다. 욕은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문명의 진보는 욕망이 일군 것이다.
노는 성냄이지만 거룩한 분노가 518의 항쟁을 낳았다. 희노애락애오욕이 모두 선으로도 혹은 악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이유는 구조론의 가역원리 때문이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결정하니까.
구조론으로 말하면 소속은 절대적이며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로 갈수록 점점 상대적으로 된다. 총은 파트너를 괴한으로 만나면 악이 되고, 경찰로 만나면 선이 된다. 그 방아쇠에 누구 손가락이 걸리느냐다.
이가 기보다 우월하다는 퇴계의 발상은 자동차는 자동차운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과 같다. 자동차는 아직 운전수와 승객이 타지 않았으므로 사고가 나지 않는다. 반면 자동차운전은 필연 사고를 부른다.
게다가 기름값도 만만찮다. 감가상각비도 든다. 자동차는 타인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좋은 것이요, 자동차운전은 기름값 들고 중고차 되고 사고날 위험 있으므로 제한적으로 좋다.
●이 - 자동차를 주겠다≫누구나 좋아한다.
●기 - 자동차운전 시켜주겠다.≫어떤 사람 좋아하고 어떤 사람 싫어한다.
그래서 자동차는 자동차운전보다 낫다? 이건 얼빠진 소리다. 모든 자동차는 운행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율곡의 기일원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년은 천사와 같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그러므로 소년은 선하고 어른은 악하다? 그 소년은 결국 어른된다. 사과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과잼은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 왜?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하니까.
이렇듯 존재론의 전개는 5단계가 있으며 전개의 정도가 심화될수록 선택이 복잡해진다. 존재론의 질에서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갈수록 궁합이 복잡해져서 좋거나 혹은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 퇴계는 이와 기를 구분하였을까? 옛날 천자문이 한자번역을 잘못해놔서 퇴계가 한문의 어원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본질은 따로 있다. 왜 인의예지 사단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인의예지 넷은 원형이정, 건리감곤, 사언절구에 맞추려고 억지로 나눠놓은 것이고 정답은 합리성 하나다. 그러므로 합리성 개념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자기일관성, 자기동일성, 자기정체성이다. 인의예지가 중요한 것은 한번 하면 계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단이 자동차이고 칠정이 그 자동차의 운전이라면 처음 자동차를 잘 선택해야 한다.
자동차가 마티즈인데 운전솜씨가 F1일 수는 없다. 자동차와 자동차운전은 필연 연동된다. 사단과 칠정은 연동된다. 차가 슈퍼카라야 운전솜씨가 F1급이다. 이 점에서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정확하다.
기의 에너지원리가 이의 일관성 원칙을 태우고 가는 것이다. 에너지의 길은 논리의 길에 연동된다. 에너지는 절대로 일관성의 길을 간다. 율곡은 형이상과 형이하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런건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주자학에 숨은 중화주의다. 지금 모택동이 사방을 정벌하여 티벳과 내몽고와 만주를 자기네땅이라 우기지만 어디 사실이 그런가 말이다. 진실로 말하자면 신해혁명은 만주를 제외한다.
신해혁명은 청조를 타도하고 명조를 계승했다. 그래서 그들을 장발적이라 불렀다. 명나라 중국이 진정한 중국이다. 그들이 청나라때 얻은 대만과 모택동이 정복한 티벳을 자기네땅이라 우기니 ‘대중국주의’다.
주자는? 소중국주의다. 주자는 금나라 오랑캐는 중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중국은 중화민족의 중국이라 여겼다. 그의 이원론은 중화민족의 지배를 주장하는 것이다. 왜? 북송이 망해서 남쪽으로 쫓겼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한반도에서도 일어났다. 고려시대 김부식과 묘청이 대결한 이후 한국사의 큰 줄거리는 경주세력과 서북세력의 대결이다.(필자의 과거 글 참조) 그런데 조선왕조의 건국주역은 서북세력이다.
이성계는 중국계, 통두란은 여진족이다. 고려 왕씨 역시 중국계다. 그러므로 서북세력의 입지를 주장하여 국호를 고려라 한 것이다. 조선왕조 역시 건국주역이 서북세력이므로 기자조선을 더듬어 조선으로 국호를 정했다.
지금 우리 교과서는 다르게 기술했겠지만 이성계가 국명을 정할 때 기자조선으로부터의 중국쪽 연고를 강조한 것이다. 승자인 서북세력이 훈구공신 되고 패자인 경주세력은 두문불출하게 되었다.
권력에서 밀려난 경주세력이 소백산 남쪽으로 도망가서 영남 남인세력을 형성한 것이며 이들이 퇴계의 패거리다. 이들은 줄기차게 서북세력과 대결하면서 서북을 한국에서 배제하려는 소한국주의를 퍼뜨린다.
율곡은 출신이 북쪽이라 자연히 서북세력에 가담하고 이후 노론이 권력을 잡고 북벌을 추진하게 된다. 서북에서 정체성 찾기다. 퇴계에서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남인정서의 뿌리는 서북을 배제하려는 소한국주의다.
중국은 대중국주의를 표방하며 사방을 정벌하여 자기네땅이라 우기는데 우리는 왜 소한국주의를 표방하며 얻은 북한도 중국에 내주려고 하는지 나는 딴나라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이름이 딴나라겠는가? 자기 나라를 남의 나라로 여기니 딴나라인 것이다. 개성공단 포기하고 금강산 포기하고 국토를 다 내주려고 한다. 왜 이런 짓을 벌이나? 뿌리깊은 경주세력의 습성이다.
퇴계 이원론의 이 개념은 인도 브라만 계급의 발상과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차별하고 분리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천하에 대한 개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우리 것은 우리 조상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것은 진리의 보편성에서 나온다. 서북이 있고 그 위에 대륙이 있고 그 위에 세계가 있고 그 위에 우주가 있고 그 위에 신의 완전성이 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작은 한국에 안주하지 말고 보편진리, 보편가치, 보편원리에서 우리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 퇴계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옛날에 쓰다버린 수입품이다. 율곡이 우리것이며 율곡은 보편주의를 주장했다.
율곡은 편벽에 서지 않고 보편타당을 추구했으므로 덜 한국적, 덜 성리학적, 덜 유교적이다. 진리는 원래 그렇다. 한국진리 일본진리가 따로 있으랴. 우리불교가 통불교이듯 유교도 일원론이어야 한다.
이와 기의 구분은 수학과 과학의 구분이다. 퇴계의 이발개념은 수학을 과학 위에 올려놓고 둘 사이에 계급을 가른 거다. 구조론으로 보면 수학이 과학에 선행한다. 율곡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분리할 수 없다. 과학없는 수학은 존재가 없다. 수학없는 과학 역시 존재가 없다. 수학과 과학의 분별망상, 이와 기의 분별망상은 ‘나’와 ‘나의 몸뚱이’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나의 정신은 높고 나의 몸뚱이는 낮다는 식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가 무슨 소용이랴. 존재론으로 말하면 소속과 영역과 파트너와 포지션과 임무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연동되어야 한다.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율곡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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