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雲住寺), 가을비 -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 Le Clezio·68)
Le Clezio (르 클레지오)소설
1940-
Le Proces-verbal (조서)1963
La Fievre (열병)1965
Le Deluge (홍수)1966
Terra amata (사랑하는 대지)1967
Mondo et autres histoires (몽도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1978
Le desert (사막)1980
Trois villes saintes (성스러운 세 도시)1980
Poisson d'or (황금 물고기)1997
L'Africain (아프리카인)2004
프랑스의 니스에서 1940년에 태어난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는 처녀작 『조서』로 르노도상(賞)을 받고, 그 젊음과 특이한 문학적 세계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1950년대와 60년대 프랑스 소설의 전위적 운동인 ‘누보로망’에 관여하였으나, 후에 자기 나름의 작품을 개발하여 거대하고 서사적인 세계가 아니라 ‘작은 모험들’로 이루어진 세계의 리얼리티를 우화로 표현하였다. 그는 사물의 평온해 보이는 외관을 파고들어 인간의 내적 무질서 및 세상과의 불화를 분명히 드러나게 하였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어리석은 방황을 계속하는데, 『조서』의 아당 폴로의 운명이 그 좋은 예이다. 『홍수』는 어느 곳에서나 죽음을 보는 한 남자가 고의로 태양을 직시하여 스스로 장님이 되는 이야기이다. 『열병』에서는 일상생활의 열기와 정신이상이 서로 매우 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 10월, 한불작가교류 행사로 한국을 방문하여 시 「운주사 가을비」를 썼다.
르 클레지오 한국 방문 감상 詩
지난 10월 14일부터 9일간 대산문화재단과 주한프랑스대사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 작가 장-마리 구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 Marie Gustave Le Clézio)가한국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 니스로 돌아간 다음 날 재단으로 Fax가 한 장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 나흘, 광주에서 사흘을 보내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 자연을 체험한 감상을 시로 보내왔습니다.
10월 21일 일요일 아침, 아내 제미아를 비롯한 일행과 함께 비가 내리는 화순 운주사를 찾은 르 클레지오는 천불천탑의 전설이 서려있는 운주사 곳곳을 돌아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시의 대부분은 운주사에서의 감흥을 담고 있습니다.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르 클레지오는 원래 시인으로 문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인 로트레아몽(Lautreamont)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시에 관해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 르 클레지오가 쓴 「운주사, 가을비」는 그가 20년 만에 다시 쓴 시입니다.
운주사(雲住寺), 가을비
르 클레지오 作
흩날리는 부드러운 가을비 속에
꿈꾸는 눈 하늘을 관조하는
와불
구전에 따르면, 애초에 세분이었으나 한분 시위불이
홀연 절벽쪽으로 일어나 가셨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분 부처는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서울거리에
젊은이들, 아가씨들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무언가를 사고, 팔고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운주사의
가을단풍속에
구름도량을 바치고 계시는
두분 부처님을
아뜩 잊은채
찾고 달리고
붙잡고 쓸어간다
로아*의 형상을 한 돌부처님
당신(堂神)을 닮은 부처님
뜬눈으로 새는 밤
동대문의 네온불이
숲의 잔가지들만큼이나
휘황한 상점의 꿈을 꾸실까?
세상 끝의
바다 끝의
분단국
겁에 질려
분별을 잃은 듯한 나라
무엇인가를 사고 팔고
점을 치고
밤거리를 쏘다닌다
서울이 불밝힌 편주(片舟)처럼 떠다닐때
고요하고 정겨운
인사동의 아침
광주 예술인의 거리
청소부들은 거리의 널린 판지들을 거두고
아직도 문이 열린 카페에는 두 연인들이 손을 놓지 못한다.
살며, 행동하며
맛보고 방관하고 오감을 빠져들게 한다
번데기익는 냄새
김치
우동 미역국
고사리 나물
얼얼한 해파리냉채
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
에테르 맛이 난다.
바라고 꿈을 꾸고 살며
글을 쓴다
세상의 한끝에서
사막의 한끝에서
조명탄이 작열하며 갓 시작한 밤을 사른다.
갈망하고 표류하고
앞지른다
간판에 불이 들어온다
숲의 부러진 나무가지들처럼
나는 여기서 휘도는 바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속으로 회색의 아이들을 눕히는 바람에 대해
매운 사막의 관위로
기다리고 웃고 희망을 가지고
사랑하고 사랑하다
서울의 고궁에
신들처럼 포동포동한
아이들의 눈매는 붓끝으로 찍은 듯하다
기다리고 나이를 먹고 비가 온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길게 바다로 흘러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한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하나가 지나는 것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눈을 뜨고 잠을 청한다
세상이 벌써 전율한다.
서울-파리
2001년 10월 22일
* 로아의 신 : 곧은 콧대에, 반원형 눈썹을 한, 긴 얼굴의 이 아프리카의 신은 아이티를 거쳐서 한국 불교의 평심속에도 발견이 된다.
* 번역 : 최미경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프랑스 대표작가 르 클레지오, 그의 작품세계
-인간 존재론적 고뇌 '신화적 세계'로 탐색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장 지오노상을 수상한 뒤 자신의 책 ‘황금물고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르 클레지오는 9일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 Le Clezio·68)는 ‘살아 있는 최고의 불어권 작가’라는 찬사를 받는 프랑스 대표작가다.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소년기를 보냈지만, 그는 유럽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파나마 멕시코 등지를 방랑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2001년 10월 한불작가교류 행사 참석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4차례 한국을 다녀갔을 뿐만 아니라, 지난 학기까지는 약 1년 동안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한국에서 머물기도 했다. 2001년 방한 때는 전남 화순 운주사를 방문한 뒤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63년 2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조서’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해 이 작품으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초기작은 대체로 극도의 긴장감을 동반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조서’는 누보 로망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지만, 문제의식의 치열함과 형이상학적 긴장은 여타 누보 로망 작가들과 일정한 차이를 드러낸다. ‘열병’ ‘홍수’ ‘혁명’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프랑스 문단의 거장으로 우뚝 선 그는 지금까지 ‘섬’ ‘사막’ ‘아프리카인’ ‘어린 여행자 몽도’ 등 40여편의 소설을 펴내며 성공적인 문학 생애를 이끌어 왔다.
르 클레지오는 1940년이라는 ‘전쟁과 평화의 과도기적 시대’에 태어난 삶의 특수성 때문에 인간의 삶과 기원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 왔다. 그는 “부모님이 아프리카에서 신혼시절, 축제의 밤이 한창 무르익는 가운데 자신이 잉태되었다”고 상상할 정도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작가이도 하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인간의 다양한 삶에 내재돼 있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찾아내고 존재의 근원을 찾아내는 작업”을 자신의 여러 작품 속에 드러내 왔다.
문학평론가 박철화 중앙대 교수(문예창작과)는 “르 클레지오는 유럽문화 중심지에 갇히지 않은 사람이고, 유럽문화 폐쇄성 바깥으로 끊임없이 나가고 싶어 한 작가”라며 “유럽 전통이 아닌 다른 문화에 대한 향수와 동경 때문에 멕시코에서도 10여년을 살았고 한국에서도 머물 정도로 다른 문명에 대한 존중을 추구해 왔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르 클레지오는 끊임없이 인류의 보편정신을 탐색해 나가는 영원한 ‘노마드’인 셈이다.
그는 한 인물에 의해 포착되는 왜곡된 세계를 파괴하기 위해 시점을 결렬시키고, 편지나 광고 문구 같은 것들도 서술의 영역에 끌어넣었다. 이는 누보 로망이 시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전통소설의 단일한 구성을 해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특징을 나타내는 르 클레지오의 글쓰기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며,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집약된 삶의 모습과 의식, 혹은 감성의 흐름을 포착하는 작업이다. 그의 글쓰기는 특정 집단 속에 갇혀 있는 이방인의 심정으로 비롯된다.
르 클레지오는 산업사회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세계관을 드러낸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는 “1980년 ‘사막’에서부터 그의 작품은 변하기 시작해서 문장은 투명하고 소박해지고, 지적 긴장은 신화적, 영적 울림으로 변했다”며 “혹자는 예상밖이라고 하지만 이런 변화는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고, 눈앞의 물질적 현존과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투쟁할 당시에도 르 클레지오는 이미 신화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소설가 황석영씨는 지난해 르 클레지오와의 대담에서 그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방북 이후 망명 생활한 나와 클레지오 형님은 평생 한곳에 머물지 않은 공통분모가 많다”며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라는 그의 말에 동지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지난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혁명’에서 보여주듯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만 심정적으로는 제3세계인임을 선언한 작가인 셈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20여권에 이른다. 데뷔작 ‘조서’를 비롯해 ‘홍수’ ‘혁명’ ‘사막’ ‘황금 물고기’ 등 대표작 대부분이 번역 출간됐다. 르 클레지오는 올해 출간된 영화 에세이 ‘발라시네: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에서 한국 영화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김기덕·박찬욱·이창동 감독 등의 작품을 예로 들며 “한국에는 폭력과 정치가 뒤섞인 독특한 문화가 태어났으며 한국문학은 그런 배경에서 리얼리즘을 취했다”며 “이는 근거 없는 폭력이 아니라 물질주의적인 세계에 맞서는 반항”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송민섭·이성대 기자
stsong@segye.com■2008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1940 4월13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1948년 나이지리아에서 영국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에게 건너감
1960년 니스대 졸업 후 영국 브리스톨대 유학
1963년 첫 소설 ‘조서(원제:Le proces-verbal·The interrogation·調書)’ 발표
1966∼1967년 군입대해 태국 방콕에서 교관으로 복무
1970년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소설 ‘전쟁’(1970) ‘거인들’(1973) ‘저편으로의 여행’(1975) 등 발표
1980년 발표한 소설 ‘사막’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폴 모랑상 수상
1994년 ‘생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어를 쓰는 작가’로 선정
2001년 한불작가교류행사 참석차 한국 첫 방문. 전남 화순 운주사 방문 때 시 ‘운주사 가을비’ 남김
2002년 미국 뉴멕시코대 불문학과 미술사 교수로 재직
2003년 자전적 소설 ‘혁명’ 발표
2007∼2008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초빙교수로 강의
노벨문학상! 르 클레지오 대표작 돌아보기
J.M.G. 르 클레지오 (Jean-Marie Gustave Le Cle'zio)
대학에서 프랑스 언어와 문학에 대해 공부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프랑스 문단에서는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가 우리나라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을 탐독하면서 이것들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런데 르 클레지오가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럴 수가! 내심 황석영 작가나 고은 작가가 받지 못해 아쉽기도 했지만, 프랑스 문학의 살아 있는 거장이 상을 받아 더 알려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찼다.
“새로운 출발, 시적 모험, 관능적인 희열이 넘치는 작품,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사한 작가.” _ 2008 노벨문학상 선정이유서 전문
전문이 참 짧기도 하지만, 덕분에 이제 한국에서도 르 클레지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할 터, 기쁜 마음으로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하나하나 읽다보면 ‘좋은 작가’를 발견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1. 황금 물고기 (원제 : Poisson dor)
어느 나라든 대중문학이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그런데 르 클레지오는 순수문학을 써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다. <황금 물고기>는 설정이 흥미롭다. 어릴 때 납치된 라일라, 그녀는 자신이 정체성을 모른다. 그러면서 성장해 가는데 그 삶이 어떨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라일라의 삶은 절박하다. 그것을 르 클레지오는 집요하게 쫓고 있는데 그 묘사가 하나의 예술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이리 저리 이동하는 어느 여인의 삶을, 감수성 짙은 소녀의 마음을 르 클레지오는 마치 곁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렸다. 한 여인에 대한 어느 탐구, 그것은 허를 찌르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2. 성스러운 세 도시 (원제 : Trois Villes Saintes)
프랑스 언론은 르 클레지오가 글을 잘 쓴다고 말한다. 특히 문장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성스러운 세 도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기를 통해 현대 문명을 비판하며 반성하고 찾아야 할 것을 말하는데 서술이 하나의 시 같다. 하나의 리듬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곳곳에 묻어난 소설이다. 특히 성지를 묘사하는 부분들은 압권이다. 아름다운 언어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다.
3. 조서 (원제 : Le Proce's-verbal)
르 클레지오의 데뷔작으로 ‘자신이 군대에서 탈영했는지 아니면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왔는지 잘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부제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담 폴로는 산골짜기의 버려진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여자 친구를 빼고는 외부와 일절 소통하지 않는데 그 과정을 통해 서구 사회의 인위성을 비판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을 볼 때 주목해야 할 것, 바로 ‘지배문명’의 그늘 아래 존재하는 살아있는 한 인간에 대한 탐구인데 이 소설은 그것을 열어가는 첫 시도였던 셈이다. 그런 만큼 서술비법도 파격적이다. 중간 중간 글을 삭제하기도 하고 신문기사 같은 것으로 이야기를 꾸며가기도 한다. 르 클레지오 소설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인 셈이다.
4. 아프리카인 (원제 : L'Africain)
아버지의 사진을 본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다. 그 아버지는 다른 이들의 아버지와 다르게 사이가 좋지 않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부자간의 일반적인 갈등? 그 정도가 아니다. 두려움의 존재다.
<아프리카인>은 두려움의 존재이자 경외의 대상인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 어느 아들의 이야기인데 주목할 것은 이것이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은 둘째치고라도 르 클레지오라는 작가가 어떻게 살았고 미래를 향해 무엇을 하는지를 아는데 좋은 기회를 준다. 시간을 거스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를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이 소설만의 재미다.
5. 사막 (원제 : Desert)
사하라 사막의 원주민과 한 처녀의 삶을 그리는 소설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문명을 비판하는 솜씨나 자유로운 것에 대해 말하는 솜씨가 정말 일품이다. 이 소설만 보더라도 르 클레지오가 프랑스에서 추앙받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은 절판돼 도서관에서만 빌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6. 하늘빛 사람들 (원제 : Gens des nuages)
5편의 소설 외에도 르 클레지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하늘빛 사람들>이다. 이 책은 르 클레지오와 그의 아내 제미아가 사진작가와 함께 사막 풍경을 담았는데 그 모습이 경이롭다고밖에는 말할 수밖에 없다. 사막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을 르 클레지오의 아름다운 언어와 멋진 사진으로 보니 당연하다. 책장을 여는 순간 마치 사막에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7.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이 책도 빼놓을 수 없다. 멕시코의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세기의 만남’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만남을 르 클레지오가 다시 썼다. 일종의 평전인 셈인데 단순히 인물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연관시켜 소개한 것이 흥미롭다. 르 클레지오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다.
노벨 문학상 르클레지오 작품세계 [중앙일보]
인위적 서구 문명 벗어던지고 자연 회귀
르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68)는 진작부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멕시코나 사하라 사막에서도 그의 책은 쉽게 발견될 정도로 이미 세계적 작가다. 그는 “자유라는 가치는 그리스 시민이 아닌 노예들에게서 나온 것일지 모른다”고 즐겨 말한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학생들과 어울리고 있는 르클레지오.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찍은 사진이다. [중앙포토]
기독교 문명에 바탕한 서구적 틀을 벗어던지고 자연과 합일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왔다. 평소 “나는 조국이 없다.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다”라 말하는 그의 문학적 세계관은 삶의 행적과도 닮았다.
르클레지오는 1940년 세계적인 휴양도시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태어났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 태생인 영국계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를 뒀다. 만삭의 어머니가 남편을 떠나 니스에 머무는 사이에 그를 낳았기에 이중국적자(프랑스·모리셔스 공화국)다.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기에 처음엔 영어로 글을 쓰려 했다.
그러나 영국이 모리셔스 섬을 식민지화하려는 데 반감을 느껴 불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63년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Renaudot)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물질문명에 희생되는 왜소한 인간군상을 다룬 이 소설은 프랑스 드골 정부에 대항한 알제리의 독립 전쟁을 모티브로 했다. 66년 프랑스군에 입대한 그는 2년간 방콕에서 교관으로 체류했다. 이때 접한 불교문화와 선(禪)의 세계는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7년엔 멕시코에서, 68~73년엔 파나마에서 체류하며 남미 인디언의 삶에 매료돼 인디언 신화를 번역해 책으로 냈다. 65년 『열병』을 거쳐 서구 대도시의 혼돈·두려움·고뇌를 그린 『홍수』(66)를 발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사랑의 대지』(67), 『도피의 서』(69), 『전쟁』(70), 『거인들』(73)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명성을 확고히 한다. 『저편으로의 여행』(75)에서 보이는 절제된 문체와 보다 폭넓은 주제 의식은 단편집 『몽도,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78)에서 산업화 이전 사회의 순진함,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로 이어진다.
1980년 『사막』을 비롯한 그의 전 작품으로 ‘프랑스의 한림원’이라 불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스웨덴 한림원도 9일 수상 이유를 설명하며 “『사막』은 이민자들의 눈에 비친 북아프리카 사막의 잃어버린 문화가 잘 그려진 작품”이라 평가했다.
르클레지오의 작품을 가장 많이 국내에 번역·소개한 소설가 최수철 교수(한신대 문예창작과)는 “그의 작품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고 설명했다. 『홍수』등의 초기작에서 서구 문명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성 말살 소외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보여준 형이상학적이고 분석적인 문체가 점차 서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관심 자체도 변해갔다.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 대신 서구 사회가 현대적인 삶에서 잃어버린 감수성을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다른 문명권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줬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특히 『혁명』(2003)은 “현대의 인종문제, 문명권의 갈등 문제 등을 노 작가의 깊은 시각으로 종합하고 아우른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림원도『혁명』에 대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 즉 기억과 망명, 어린시절에 대한 재성찰, 문화 갈등을 집약시킨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르클레지오는 발표 당일인 9일 아침 프랑스 뉴스 전문 라디오 프로 ‘프랑스 엥테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해 “내가 클로드 시몽(1985년 수상자)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겸손하게 답했다.
그러나 불어권 문학 전문 번역가 이세욱씨는 “휴머니티와 세계성을 견지하며 일관된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르클레지오의 노벨상 수상은 어쩌면 당연하다”며 “여러 문화권이 교차된 출생과 결혼(사하라 사막 유목민의 혈통을 이은 모로코 부인), 남미와 아시아 등 세계 문명을 아우르는 방랑적 삶을 작품으로 담아낸 그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적 작가”라고 평가했다.
이은주·이지영·이경희 기자
노벨 문학상 르클레지오 설렁탕·붕어빵 즐기고 영화에도 관심
한국과 인연 깊은 르클레지오
“저녁나절에 소주 한 잔 걸칠 줄 알아야 완전한 한국 사람이 된다죠? 그것만 빼면 나도 한국 사람 다됐는데.”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클레지오가 한국에서의 첫 학기 강의(이화여대)를 마치고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과거 네 차례나 한국을 찾은데 이어 지난해 가을부터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아 내처 눌러앉았다. 노벨상 발표 이틀 전까지도 국내에 있었다. 이중국적자(프랑스·모리셔스 공화국)로 태어나 일생동안 미국·영국·나이지리아·멕시코 등 각국을 돌아다닌 그에게도 한국은 “특별한 나라”였다. 한국에 대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다이내믹하고 다채롭다. 정 많고 예의바른 한국 사람들 덕분에 한국에서 숨쉬는 매순간이 행복했다“고 털어놓았다.
2001년 한국 첫 방문 당시 전남 운주사를 찾은 그는 프랑스어로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발표했다. “한국어로 시를 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던 그는 이후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생 김건희씨는 “시험기간에는 ‘행운 빌어요’같은 짤막한 문자도 보내주셨다”고 전했다.
르클레지오는 한국의 문학·영화 등에 고루 관심이 컸다. 한강·김애란 등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거론하며 “20, 30년 뒤에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작가”라고 극찬했다. “유럽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38선과 한국전쟁 같은 이데올로기적이고 경직된 나라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남한은 독자적으로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과도 교분이 두텁다. 세 살 차이인 이들은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 황씨는 “르클레지오 형님과 나는 평생 한 곳에 머물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라는 형님의 말에 동지 의식을 느끼게 됐다”며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고 했다.
르클레지오는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펴낸 영화 에세이집 ‘발라시네(Ballaciner)‘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책을 위해 이창동·박찬욱·이정향 감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화여대 국제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소탈하게 어울렸다. 좋아하는 음식으로 “학교 후문에 있는 ‘엄마손식당’의 알밥·설렁탕”과 “추운 날 길거리에 파는 붕어빵”을 꼽을 정도였다. 최미경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이런 일화도 전했다. “어느날 전기밥솥을 구해달라기에 작은 것을 선물했다. 나중에 보니 거기에 야채와 고춧가루를 풀어 직접 한국식 국을 끓여 드시더라. 다른 방 학생들까지 불러 나눠 먹는 소탈한 모습에 당황함 마저 느꼈다.”
(djroad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