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로마나와 팍스아메리카나

이상현(세종대학교 명예교수)

1. 서론

1) 오늘의 세계를 팍스로마나를 원용하여 팍스아메리카나의 세계라 한다.
오늘날 말하는 지구촌 시대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라는 말이다. 그러면 팍스아메리카나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속에 포함된 세계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를 우리는 팍스로마나시대를 이해함으로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역사는 반복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은 구체적 사실 사건이 동일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나, 커다란 형태에 있어서 유사성은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팍스로마나와 팍스아메리카나는 동일사항의 반복은 아니지만 유사상황의 반복이란 점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라 해야 할 아놀드 토인비는 <A Study of History>를 써서 도전에 대한 응전, 창조적 소수자와 지배적 소수자, 역사의 영화의 과정 석화의 과정, Universal State와 Universal Religion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역사의 흥망성쇠의 과정을 설명하고 서구세계의 위기를 예고하고 아울러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장하였는데, 여기서 모델로 삼은 것은 전적으로 로마사의 흥망성쇠의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토인비에 따르면, 세계사는 여러 개(26개) 문화-문명의 흥망성쇠과정을 유기체적 단자로 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인데 그 문화-문명은 각각 하나의 단위체로서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은 인간이 주변의 적당한 환경의 도전에 응전하여 문화를 일으키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당시에 나타난 창조적 소수자들의 역할이다. 창조적 소수자들이란 영적인 지도력을 갖춘 인물들로 대중을 이끌어 문화를 창출한다. 이렇게 시작된 문화는 발전 성장을 하게 되는데, 이처럼 문화가 발전 성장하는 단계를 역사의 영화의 과정이라 한다.
우선 이 영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적당한 환경의 도전이 있어야 한다. 적당한 도전이란 지나치게 열악하지도 지나치게 안온하지도 않은 환경을 말한다. 에스키모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선 문화라는 생명체의 씨가 싹을 틔울 수가 없다. 태평양 폴리네시아 같은 섬들에선 문화를 일으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탈리아반도와 같은 자연환경은 로마와 같은 제국을 형성할 수 있는 적당한 환경을 지닌 곳이었다. 초기 로마는 농경지에 에트루리아라는 작은 왕국의 씨알이 떨어지고 그것은 군사적인 직업을 가진 창조적 소수자들에 의해서 발전하였다.
먼저 주변의 여러 종족들을 흡수-통합하여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나아가서 당시의 강적으로 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를 포에니전쟁을 통해서 정복하고 이어서 지중해 주변과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점거하였던 모든 지역을 점거하여 이른바 로마제국을 이루었다. 이 기간에 창조적 소수자로서 카토라든가 대-소 스키피오와 같은 인물들이 출현하였고, 나아가서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와 같은 인물들이 출현하였다.
그 결과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 즉 로마의 황제로 군림하면서 로마는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지고 더 이상 전쟁을 할 필요가 없게 되면서 이른바 팍스로마나 200년의 평화시기가 도래하였다. 토인비의 용어로 말하자면 보편국가(Universal State)가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로마는 서서히 붕괴의 과정을 겪게 된다. 먼저 오랜 평화의 시기는 로마인을 사치방종 나태와 타락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로마의 지도자들은 초기 영화과정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지배적 소수자들이었다. 그들은 로마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지 못하고, 스스로 귀족계급이라는 신분적 특권에 자만하여 비생산적인 전쟁놀이를 위해 콜로세움을 짓고, 폼페이시가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은 음란과 사치 방종에 탐닉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낭비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플레비안이라 하는 당시 서민계층에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을 물리고 나아가서는 이를 중산층에게 까지 확장하였다.
여기서 로마제국은 기독교라는 내적프롤레타리아와 게르만의 이동이라는 외적 프롤레타리아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리나 이미 로마에는 이러한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창조적 소수자는 없고 로마의 역사는 석화의 과정을 걸어야 했다. 그 결과 로마제국은 붕괴-해체의 과정을 걸어야 했다.
다행하게도 로마는 문화사적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로마가 성립되기 이전의 모든 문화들을 받아들여 이른바 고대문명의 호수가 되어있었다. 신생 종교인 기독교는 이러한 고대문화를 통합 융화시켜서 보편종교로 발전하게 되었고, 로마가 멸망한 뒤 서구세계는 보편종교인 기독교에 의해서 구제되어 갔다.
팍스아메리카나는 이러한 로마사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우선 아메리카는 로마가 그리스문명의 이전으로 시작 되었듯이 서구문명의 이전으로 비롯되었다. 마치 그리스의 상업적인 식민자들이 로마로 몰려들어 문화를 전수하였듯이 콜럼버스의 발견이후 서구의 탐험가들과 이민자들은 아메리카대륙을 개척하였다. 그중 영국의 앵글로 색슨은 메이 풀라우어 호로 상징되는 식민을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주변 인디언들을 정복-추방하고 영역을 넓혀 드디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북아메리카 대륙을 석권하는데 성공하였다.
다시 이들은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계의 초강자로 군림하고 그로부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페만사태, 이락전쟁 등을 통하여 세계지배권을 확립하더니 드디어 1980년대 구소련과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전 세계에 적대자가 없는 이른바 팍스아메리카나를 이루었다. 한마디로 지금 세계는 미국에 의한 보편국가(Universal State)가 된 것이다.


2) 이 과정에서 두 나라에서는 자본주의적 대규모 산업사회가 주도권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로마는 포에니 전쟁으로 지중해를 하나의 호수로 하는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전쟁을 통해서, 그리고 패권을 장악한 뒤에도 소규모의 국지전을 통하여 노예 노동력을 확보해서 라티푼디움이라는 대규모 토지사유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근간으로 하여 귀족의 족벌과 군벌을 겸하는 재벌의 출현을 보았다. 이들 재벌과 군벌들은 로마 본국뿐만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정복된 전 세계 각국에 일종의 플랜트, 즉 식민지를 만들고 지배와 생산-착취를 자행하였다. 여기서 세계 각국은 로마제국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고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체계 속에서 살아야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세계대전을 통하여 강대한 자본축적을 이루었고, 그들이 가는 곳곳에서 석유 에너지를 확보하여 대규모의 공장체제를 이룩하고, 이것을 근간으로 하여 대재벌의 출현을 보았다. 이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플랜트를 세우고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체제하에서 지금 전 세계인들은 초국가적 재벌 회사의 회사원이나 노동자로 고용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모든 사람은 영어를 배우고 미국을 원점으로 하는 교통통신망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3) 팍스로마나와 팍스아메리카나의 유사성은 정치 경제보다도 문화에서 더욱 뚜렷 하다.
팍스 아메리카나와 팍스로마나는 세계질서를 둘러싼 그 정치적 의미나 극도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에너지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경제적인 유사성도 중요하지만, 그 초입에 카이사르의 피살과 클레오파트라의 염문과 케네디의 피살과 그 부인 재크리느 여사의 러브스토리와의 유사성뿐 아니라, 철학이나 문학 등의 문화 일반에 있어서도 매우 유사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로마는 전통적인 문화나 종교가 없는 나라였다. 로마는 문화적으로 그리스의 전통을 무조건 흡수하는 입장이었다. 신화는 그리스의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름만 라틴어로 발음하는 정도였고, 철학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헬레니즘 시대에 스토아철학과 에피쿠로스철학 네오플라토니즘으로 변질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역사학도 그리스의 폴리비오스의 역사학을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유럽의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철학도 유럽의 근대 철학인 계몽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삼았다. 한마디로 로마와 미국은 자체적인 문화전통은 없고 각각 그리스와 유럽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면서도, 로마와 미국은 각각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세력이 세계화되어 가면서 그리스나 유럽의 전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각지의 전통과 문화를 통합-흡수하여, 세계문화의 호수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로마는 멀리 인도의 불교나 이스라엘의 유대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등과 그에 수반된 각종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아메리카는 불교는 물론 중국의 유교, 중동의 이슬람교, 인도의 힌두교까지도 수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로마와 미국의 특징은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의 천지다.
이러한 자유주의로 해서, 팍스로마나의 세계에서는 코즈모폴리턴이라는 세계주의가 세계인의 하나 됨을 유도하였고, 팍스아메리카나에서는 Globalism의 이상이 세계인을 하나로 통합해가고 있다. 세계인이라 함은 실제에 있어서 국가의식도 민족의식도 소멸되고 오로지 세계인으로서의 자기만이 존재하게 됨을 의미하며, 그 결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나아가서 이기주의만이 남게 된다.

4) 여기서 우리는 팍스로마나의 후속 과정을 보면서 팍스아메리카나의 미래를 추적 해볼 수 있다.
하나는 비관적 전망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적 전망이다. 정치적 평화와 경제적 풍요는 인간 정신을 나태타락, 사치방종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토인비의 말대로 내적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사회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토인비의 이론을 따르면, 사회가 발전하려면 창조적 소수자의 창조적 역할과 기능이 요구되는데, 이처럼 평화와 풍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창조적 소수자의 등장은 불가능하며 대신에 사회적 지도자들은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팍스 로마나 시대나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엔 뚜렷한 창조적 소수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 이후 로마에는 네로와 같은 폭군이나 명상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같은 인물의 이름은 있어도 창조적인 소수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태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에도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전후해서는 워싱턴 해밀턴 애덤스 웹스터 프랭클린 제퍼슨 그리고 링컨과 같은 인물들이 태어났고, 미국이 세계 초강국으로 등장할 당시 루즈벨트나 케네디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그에 상응할만한 인물들이 출현하지 않았다. 아니, 사회적 시스템 자체가 이제는 영웅적 인물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회시스템 속에서는 대중들은 내적 프롤레타리아로 둔갑하는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한 미래적 소망은 희박해지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안주하면서 감각적인 향락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생활은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의 괴리현상을 조장하여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자’의 저항의식이 점차 고양되어 사회의 분열을 촉진시킨다.
여기서 정치계에선 정치다운 정치는 사라지고 우매한 대중을 선동하여 패거리를 만들어내는 선동정치만이 판을 치게 된다. 여기에 주효하는 것이 대중언론매체이다. 언론으로서 사회적 사명은 뒤로 한 채,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발행부수와 시청자수에만 매달려, 내용도 없는 선정적인 문구와 내용만 되풀이하며 대중선동에 앞장을 서게 된다. 그리하여 정치가들과 더불어 사회를 분열시키는 촉매제로서의 악역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정신적 가치가 실종된 사회에서 윤리도덕 개념이 살아 있을 수는 없다. ‘없는 자’는 생존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비탄에 빠져 시름을 하는 동안, ‘있는 자’들은 쓰고 남는 재화를 처분하기 힘들어 사치와 낭비에 빠져 미래나 인생에 대한 일말의 반성이나 성찰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다가 죽어간다.
팍스로마나시대의 귀족들이 콜로세움에 몰려들어 검투사들의 잔인한 살인행위에 환호를 외치며 즐거워하였듯이 팍스아메리카나의 유산자, 새로운 귀족층들은 축구경기장 야구장으로 몰려들어 그 열기 속에 자신의 존재를 묻던가, 골프채를 들고 세계를 휘졌다가 화려한 호텔 카지노에 몸을 던진 채 드릴을 만끽하다가 잠에 곯아떨어지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윤리문제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토인비에 앞서서 슈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예언한 바, 몰락하는 사회의 참상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슈펭글러는 토인비의 보편국가에 해당하는 세계도시, 즉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를 이야기하였다. 이 도시는 문화를 자승자박하여 죽어버린다. 소수의 세계도시가 농촌을 지배하고 착취하여 고갈시킨다. 이 도시에서 인간은 지적 유목민이 된다. 창조력을 상실한다. 예술가와 철학자, 그리고 시인을 불필요한 존재로 생각한다. 대도시인은 기계의 노예가 된다. 민주주의는 자의적 전제로 변한다. 신문(메스 콤)과 대중잡지는 민중의 정신생활로부터 책을 추방한다. 그리하여 민중으로 하여금 되도록 자아의식을 갖지 못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한다. 드디어 민중은 한 가지 신문만을 읽게 된다. 이 신문은 아침부터 밤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주문을 외운다. 이 때문에 진지한 책은 망각의 세계로 보내지고 신문은 지배자가 필요로 하는 책은 추천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책은 살육한다.
이러한 발전하는 것은 발전하는 것은 극도로 음란해진 음주문화이고 자연을 훼손하고 들어선 러브호텔의 섹스산업이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화려한 목욕탕시설과 창녀촌으로 가득 찬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주의에 탐닉하여 즐기고 즐기다가, 그마저도 지쳐버린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사이트로 몰려들고, 생명을 건 스피드에 몸을 맡긴 폭주족들은 거리를 어지럽힌다. 이에 따라 인간 존중사상은 땅에 떨어지게 되어 출산을 거부하고, 유아살해 및 방기가 비일비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인구가 급격한 속도로 감소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자연도 이에 노하여 팍스로마나 시대의 베스비오스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폼페이를 덮치듯, 세계 곳곳에선 강도 높은 지진과 홍수와 산불이 일어나고 쯔나미 현상마저 발생하여 수백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비극이 현출되고 있다. 그리고 극지의 빙하가 녹아들어 바다의 수면이 높아져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5) 그러나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 했던가?
이 같은 파괴적이고 말세적인 사회현상은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여는 조짐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팍스로마나의 결실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의 전개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팍스로마나의 결실로 이루어진 세계문화의 통합은 그 융합의 결실로 기독교라고 하는 세계적 보편종교의 출현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이를 참고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놀드 토인비는 현대문명의 위기를 예언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보편종교의 출현을 기대하였다.
그랬다! 로마는 그 이전 시대에 창조된 범인류적 문화의 호수였다. 위에서 언급하대로 자체로는 아무런 문화적 전통을 지니지 않았기에 다른 모든 문화를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스의 철학, 헤브라이의 역사, 페르시아의 종교, 불교의 의식, 스토아의 세계주의, 바빌로니아의 법률사상, 이집트의 과학, 등등 모든 문화의 물줄기는 로마라는 호수로 흘러들었다. 로마가 정치 경제적으로 건전하였을 때, 이 문화들은 단순히 혼합의 형태로 존재하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팍스로마나의 부산물로 사회가 피폐되면서 이들은 기독교라는 보편종교로 융합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로마제국을 붕괴시키는 내적 프롤레타리아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라틴계 이외의 민족들의 변화와 이동이었다. 로마인들의 정복의 대상이었던 알프스 이북의 게르마니아 인들과 슬라브인들은 로마나 시대에 자극을 받아 로마문명권 안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로마의 문명을 찬양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무리들이, 다음엔 정복된 노예의 신분으로, 그 다음엔 로마의 국경을 수비하기 위한 용병의 자격으로 로마로 이주하다가 드디어는 부족들이 무력을 앞세워 로마로 진군해 들어 왔다. 이른바 게르만 이동이다. 이렇게 이동한 게르만들은 로마에서 발생한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의 십자가를 앞세우고 유럽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른바 중세 게르만의 기독교 세계의 전개다.
팍스아메리카나 세계엔 아직 새로운 보편종교의 출현은 있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의미가 애매하다. 그러나 세계 모든 곳에서 개별적으로 발전한 문화들이 아메리카로 몰려 들고 있는 현상은 로마와 닮았다. 미국의 전통적인 철학이나 종교나 문화는 없어도 미국엔 세계 모든 철학과 종교와 문화가 자유롭게 번성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이것들이 융합화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융합되어 새로운 보편종교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점 더 많은 고난과 고뇌의 과정을 거쳐야 될지도 모른다.
허나 분명한 것은 새로운 게르만이 흥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세력 앞에 고개를 숙인 자세로 있었지만 이제는 어께를 거눈 자세로 서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미국으로서 근접하기 어려운 적성국이었지만 이제는 협력자의 자리에 서서 서로 키 재기를 하는 수준으로 변모하였다. 인도라고 하는 나라도 중국보다 좀 거리가 멀어서였을까 좀 시간적으로 지체는 하였지만, 이제는 팍스아메리카나 세계에서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실제적으로 하나로 가고 있으며 여기서 불평등은 없다. 마치 중세 유럽의 봉건국가들이 각각 크기나 기능과 특징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모두가 하느님의 세계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생존하였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포스트모던 학자가 말했듯이 이제 세계사는 새로운 중세세계로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새로운 보편종교에 가까운 정신적 세계의 조성인데, 이것은 정치나 경제나 과학의 힘과는 별도로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원리, 그리고 행복의 조건, 영혼의 존귀함을 인식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러한 정신세계를 새롭게 열어갈 자는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가? 한마디로 팍스 로마나 시대엔 사도 바울이 헤브라이에서 나왔는데 팍스아메리카나의 사도바울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분명한 것은 기독교의 신은 니체가 선언했듯이 이미 죽었다. 이제 새로운 신이 탄생하여야 하는데 그 신은 어떠한 신일까? 그리고 그 신은 어디에서 탄생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 경제를 가늠하는 세계사의 판도가 서구세계에서 동방세계로 이행해 오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신도 기독교적인 신이 아니라, 기독교적 신을 포함한 인도와 중국 이슬람의 신들을 모두 포함한 보편적인 신이 출현해야 할 것이며 이를 신앙하는 보편적 종교가 등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신과 보편적인 종교는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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