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1년 만에 복귀했다. 민주당의 강원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이 의원을 만나 출마 여부와 친노 진영의 분열 등에 관해 물었다. 인터뷰는 3월23일 이뤄졌다.
지난 2월에 출판기념회를 했고, 요즘은 강원도를 돌고 있다. 정계 복귀를 한 건가?
정계 은퇴가 아니고 국회를 떠났던 건데…. 어쨌든 정치 전면에 다시 나서는 건 1년 만이다.
복귀한 이유가 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절망감 같은 게 많았다. 또 노 대통령 묘역이 너무 정비가 안 되어 있고, 대통령이 하고자 했던 친환경 오리농법이나 화포천 살리기의 뜻이 어느 정도 이어지도록 기초를 닦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농촌 지역구도 해봤고, 여사님을 비롯해 가족에 대해 나만큼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그 일이 굉장히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국민이 도와주셔서 빨리 안정이 됐다. 한편에서는 한 석이 아쉬운데 뭐 하느냐고도 하고, 지역구에서는 여기만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질타하시고. 그래서 이 엄중한 국면에 내가 할 일을 하는 게 도리겠다 싶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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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백승기 이광재 의원(위)은 유시민 전 장관이 ‘한명숙 당선’을 도운 후 서울시 부시장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강원도지사에 출마하는 건가?
지역구 의원이 된 후 1년에 10만km씩 다니면서 정말 강원도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짝사랑 아닌가’ 하기도 했는데, 내가 구속되고 나서 강원도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분이, 그것도 농사철에 서명해주신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치가 황량한 것만은 아니구나’ ‘이분들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맘을 먹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나은 후보를 모시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엄기영 전 MBC 사장 얘기일 텐데, 엄 전 사장은 서울시장에 더 관심이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서울시장은 한명숙 전 총리로 가는 게 좋다. 나라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서울시는 좀 더 안정감 있는 경영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조순 시장, 고건 시장 때처럼. 난 한 전 총리가 무죄판결이 나올 거라고 본다.
서울시장은 한 전 총리로 굳어지니까, 엄 전 사장은 강원도지사로 나오라는 얘긴가?
예전에 중앙부처의 1급 이상 강원도 출신 공직자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서로가 강원도 출신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 그만큼 강원도 사람이 강원도 사람을 잘 안 챙긴다. 피해의식도 크고. 엄 사장은 그런 면에서 비교적 강원도를 챙기려고 하고, MBC에 있을 때도 그런 노력이 보였다. 게다가 엄 선배랑 나는 평창으로 고향이 같다. 나는 평창에서 태어나 정선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원주고를 나왔고, 엄기영 선배는 태백에서 초등학교, 평창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춘천고를 나왔다. 엄 선배랑 내가 힘을 합치면 강원도로 봤을 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문제는 본인 의사다.
힘을 합치기를 희망하거나 합칠 거라고 본다.
힘을 합친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얘긴가? 엄기영 후보에 이광재 선대위원장?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이광재 후보-엄기영 선대위원장’도 가능한가? 이 의원이 선거에 나가면 이 의원 지역구의 재·보궐 선거 후보로 엄기영 카드가 거론되기도 하는데.
현재까지는 그건 생각을 안 해봤다. 어쨌든 엄 사장이 좋은 일꾼이라고 생각하고, 이 나라의 질식할 만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견제 세력을 키워야 한다.
한나라당에서도 엄기영 접촉설이 나온다.
엄 사장이 한나라당이 추천한 방문진 이사들에게 쫓겨났는데, 지금 그쪽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나한테 (엄 전 사장이) 누차 한 이야기도, ‘바른 언론인의 길을 가겠다’였다. 내가 2006년도에 도지사를 권했을 때도 그랬고. 그가 한나라당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구애에도 엄 전 사장이 망설인다면 뭔가 이유를 댔을 것 아닌가?
언론인을 하다 정치를 택하는 게 과연 바른 길인가 하는 데 대한 고민, 그리고 정치라는 게 험난한 여정으로 들어서는 건데 쉽게 결정내릴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이라면 나는 희생을 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인의 영달 문제가 아니다. 정치를 하는 것이, 도지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시장 후보가 되는 것이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지식인의 사명인 순간도 있다.
언제까지 설득할 건가?
4월까지면 된다. 엄 사장이 인지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그때까지 안 되면 본인이 출마하나?
회피할 생각은 없다. 강원도가 어렵다. 태백 같은 데는 한나라당 지지도가 50%를 훨씬 넘는다. 그런데도 지난번에 보니 당은 한나라당 찍고 사람은 나를 찍어서 압도적으로 이기게 되더라. 어려운 건 틀림없지만 피할 일은 아니다.
박연차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가 나왔다. 출마하기 부담스러운 상황 아닌가?
2심 공판이 4월에 진행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박연차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내가 대여섯 차례 10억원 정도를 거절했고, 돈을 주는데 안 받으려고 해서 옷장에 넣어놓고 나갔다는데, 나는 무죄가 날 거라고 본다. 한 전 총리는 의자가 유죄일 거고, 난 옷장을 기소해야지(웃음). 대한민국에서 특별검사 임명해서 조사한 게 여섯 번인데, 그중 두 번을 내가 받았다. 중수부 조사를 받고 특검 받고, 특수부 조사를 받고 특검 받고. 만약 내가 부정한 게 있으면 그때 이미 죽었을 거다. 그런데 다 살아남았다.
이번 지방선거의 전선은 무엇이 될까?
이번 선거는 여당도 어렵고 야당도 어렵다. 우선 여당은 전체적으로 잘한 게 없다. 경제만 해도 서민은 굉장히 어렵다. 작년에 가계부채가 40조원 발생해서 다들 빚을 내서 사는 심각한 상황이다. 또 하나, 여당은 일을 할 수 있게 지방선거에서도 힘을 실어달라고 하는데, 국회 3분의 2 이상 의석과 전국 지자체 90%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힘을 어떻게 더 실어줄 수 있겠나. 야당이 어려운 점은 (여당을) 심판해달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견제가 필요하다’ ‘부족하지만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부족하지만 4대강을 막아야 한다’로 가야 한다. 이번에 국민이 여야에 (광역단체장을) 반반씩 나눠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양쪽 상품을 비교할 수 있고, 저쪽 가게 갈 거 같으면 더 열심히 하고.
정세균·손학규·문재인을 대선 후보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어서 민주당이 약하다고 보나?
정동영 의원이야 이미 앞서가는 후보라고 볼 수 있고, 정세균 대표는 2003년 이래 우리가 모든 재·보선에서 완패했는데 어쨌든 최근 보궐선거 두 번을 승리로 이끌어낸 데다 사람들 사이에 ‘대가 좀 부족하지만 사람은 선한 것 같다’는 공감대가 있는 것 같고(웃음), 손학규 전 대표는 민주당에 +α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데다 수원 재·보선 불출마 등에서 처신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고, 문재인 전 실장은 기본적으로 진보 세력을 묶어낼 수 있는 토양을 가지고 있는 데다 국민 사이에 문재인이라는 사나이에 대한 호감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지도자들이 서로 경쟁하고 도와주면서 커갈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사람은 혼자 크지는 않더라.
문재인 전 실장은 부산시장도 적극 고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난 문 실장이 부산에 나오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아서 전국을 다니며 지원 유세를 하는 게 더 낫다.
선거를 앞두고 친노 인사들이 분열하고 있다.
참가슴 아프다. 국민참여당 인사들이 회군해서 민주당과 합쳐야 하고, 민주당도 확실한 양보가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짚을 게 있다. 먼저, 지금 상황이 1990년 3당 합당 직후와 매우 유사하다. 당시 거대 여당이 생기고 민주주의가 질식할 만한 상황이 왔는데,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무현·김정길·홍사덕·이기택 등이 참여한 꼬마 민주당. 현재 국민참여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쟁쟁한 멤버들이었는데, 1991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천명이나 되는 후보를 낼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 당시 기획위원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스타 군단이라는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어 지방선거에 임하면 함량미달 인사를 많이 공천하게 되고 우리 이미지가 일거에 무너지게 된다. 선거에 지고 야권 분열의 책임까지도 뒤집어쓰게 된다.
3김 청산이 옳지만 눈물을 머금고 통합하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거대 여당에 맞서 대의를 이루려면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통합을 선택하는 게 옳다. 그게 노무현 정신이다. 두 번째는 1995년에 조순 서울시장이 탄생함으로써 결국은 정권 교체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명숙 총리를 시장으로 만드는 건 절체절명의 과제다. 당시 조순 캠프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할 때 ‘조순 시장-노무현 부시장’ 카드를 제안했다. 조 선생님이 좋다고 해서 노 전 대통령에게 “만날 떨어지니까 부시장 먼저 하고, 조순 시장이 물러나면 그 다음에 시장을 하고 그렇게 안정적인 길을 갔으면 좋겠다”라고 했더니 며칠만 생각해보자더라. 그러고선 며칠 후 “참 매력적인 자린데, 난 부산으로 갈란다”라며 고사했다.
그래서 다음 카드로 이해찬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발표했던 건데, 그게 노무현한테 배워야 할 점이라고 본다. 유시민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보인 분이고 정치에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처칠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네루는 <세계사 편력>을 썼고, 인도의 한 대통령은 인도 철학사를 써서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런 면에서 유 장관은 장점이 많은 지도자다. 그런 분이 진정으로 노 대통령의 길을 가려면 노무현처럼 대구시장에 출마를 하든지, 아니면 한명숙 총리를 도와 이해찬의 길을 가는 게 옳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 선대본부장을 맡아 당선시킨 후 서울시 부시장으로 들어가 복지 서울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긴 호흡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게 노 전 대통령 뜻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통합이 먼저고.
야권 연대가 결렬된 데 유시민 변수가 큰가?
너무 크다. 회군해야 한다. 당을 만들면 당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지금은 한명숙 총리가 백척간두에서 한 보를 내딛는 순간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나 정당사에서 아주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 총리를 돕는 게 유시민 장관이 큰 틀에서 성숙하고 희망 있는 대선 후보로 성장하는 길이다.
유 전 장관은 어떤 단일화 방식이라도 수용하겠다는데, 민주당이 너무 배타적이지 않은가?
김진표 후보가 되면 민주당 후보는 전부 2번으로 통일이 가능한데, 기호 8번이 되면 2번과 불일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유시민 장관이 경기도지사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전체 대오가 성공하는 게 중요하고, 나중에 유시민 지도자가 베이비붐 세대의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으려면 이번 기회에 감동을 주면 좋겠다.
출마 선언 전에 친노 진영 안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참여당을 만들 때, 한번도 (참여) 제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을 특정 정파가 점유해 다시 한번 외롭게 할까봐 두렵다. 안 그래도 절체절명의 고독 속에서 돌아가셨는데.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바람이 불까?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자기만의 정책적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는, 포지티브한 방식이 옳다. 노 전 대통령하고 지난 20년간 함께했는데 의원회관 방에 가면 노 대통령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같이 찍은 사진이 6장도 안 된다. 진정으로 노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보다 마음속에 다짐을 하는 게 옳다. 그게 노무현을 외롭지 않게, 왜소하지 않게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