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빈도는 그의 만년의 저서 요가의 합성(The Synthesis of yoga)이란 책에서 종합요가(The yoga of integral Knowledge)의 명제로 인류구원과 해탈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진리의 인식에 있어서 다원주의 입장이었으며 12가지 다원적 관계론을 폈다. 즉 사물, 식물적, 감각, 지각, 생기적 감성의 충동, 하위심(下位心), 구체적 마음, 논리적 마음, 상위심(上位心), 환상적 세계심, 초월심(직관심), 초심(Supermind:하느님)등이다. 이러한 여러종류 단계적 종합을 통해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12가지 중 몇 가지만을 토대로 인식한 진리는 참다운 진리가 아니므로 12종류 전체의 토대 위에서 서로 내포하는 종합을 통해 참된 진리는 성립된다는 것이다.
오르빈도는 모든 요가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특히 이론적인 지식(jnana)요가와 실천적인 라자(Ra-ja : 명상과 삼매의 실천)요가의 두가지 해탈 방법을 결합시켰다. 여기에서 지식 요가의 지식이란 현상적인 모든 것과는 결합하지 않는 초현상적 진아(atman)를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대상은 영원하고 무한하여 절대적인 신(神) · 자아(自我) · 세계(世界)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아(atman:眞我)이고, 지식의 목적은 참나라는 초월적 자아를 현실속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지식에서부터 시작되나, 그것은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은 끊임없는 부정(否定)으로만 인식되고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할때 참나(atman)는 나의 완전한 인식에 있지 않고, 완전한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나를 온전한 나로 인식하려면, 지식의 요가가 목적으로 하는 지식 상태란 초월된 참나와 그 세계를 현실적 자아 또는 물리적 세계로 현실화 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화는 단순한 이성이 아닌 영적 초의식작용에 의해서 가능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참나와의 일체감과 주체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오성의 정화가 필요한데 이 정화를 위해서는 감각· 감정· 의지· 육체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성이 정화되면 오성의 활동을 돕기 위한 집중이 필요하다. 이 집중이 없다면 정화된 오성도 작용하지 못한다. 이 집중은 전 단계의 정화와 욕망의 포기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속되어 절정에 이르면 삼매의 절대적 초월 상태로 상승한다.
이렇게 즈나나 요가는 라자요가로 귀착되는데 그것은 집중과 이욕(離慾)이라는 실제적 방법에 의존해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지혜의 첫 출발이되나 지식은 힘이 아니며 지혜가 힘이 있다. 지혜는 육체· 생명· 의지· 지성과 같은 현상의 원초적인 원리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오르빈도는 모든 요가를 종합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특히 이론적인 지식(jnana)요가와 실천적인 라자(Ra-ja : 명상과 삼매의 실천)요가의 두가지 해탈 방법을 결합시켰다. 여기에서 지식 요가의 지식이란 현상적인 모든 것과는 결합하지 않는 초현상적 진아(atman)를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그에 의하면 「지식의 대상은 영원하고 무한하여 절대적인 신(神) · 자아(自我) · 세계(世界)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의 대상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아(atman:眞我)이고, 지식의 목적은 참나라는 초월적 자아를 현실속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지식에서부터 시작되나, 그것은 초월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은 끊임없는 부정(否定)으로만 인식되고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할때 참나(atman)는 나의 완전한 인식에 있지 않고, 완전한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나를 온전한 나로 인식하려면, 지식의 요가가 목적으로 하는 지식 상태란 초월된 참나와 그 세계를 현실적 자아 또는 물리적 세계로 현실화 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화는 단순한 이성이 아닌 영적 초의식작용에 의해서 가능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참나와의 일체감과 주체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오성의 정화가 필요한데 이 정화를 위해서는 감각· 감정· 의지· 육체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성이 정화되면 오성의 활동을 돕기 위한 집중이 필요하다. 이 집중이 없다면 정화된 오성도 작용하지 못한다. 이 집중은 전 단계의 정화와 욕망의 포기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이 지속되어 절정에 이르면 삼매의 절대적 초월 상태로 상승한다.
이렇게 즈나나 요가는 라자요가로 귀착되는데 그것은 집중과 이욕(離慾)이라는 실제적 방법에 의존해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지혜의 첫 출발이되나 지식은 힘이 아니며 지혜가 힘이 있다. 지혜는 육체· 생명· 의지· 지성과 같은 현상의 원초적인 원리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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