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체>

내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나의 육체가 있고, 사물이나 자연과 인간을 보고 느끼는 본능인 유전정보가 그 육체 속에 있고, 그 유전정보와 육체를 통해 인식하는 내가 그 유전정보 속에 있다. 그리고 이 모두는 지구 안에 있는 것이며, 지구는 태양계와 은하계, 그리고 우주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인지도 모르고 그 인식하는 '나'가 얼마나 적은지도 모른다. 우리가 대략 아는 것은 나와 우주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안다는 은하계라든가, 태양계라든가, 유전정보라는 것도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고 간접확인한 것으로 진실에 비해 단편적인 지식이다.
사실, 우주라는 개념은 한없이 넓은 것으로 그 넓이를 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인식하는 나라는 개념도 한없이 적다는 것이지 그것이 얼마나 적은지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육체를 통해서 느끼는 크고 작은 것도 따져 보면 인식하는 나와 대상의 거리 관계이다. 즉, 멀리 있으면 적어지고 가까이 있으면 커 보이는 것이지 실제에 있어서는 크고 작음이 없다. 그러므로 진실을 말하면, 그 작다는 인식하는 나와 그 크다는 우주는 크고 작음을 초월해 같은 것이다. 또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점도 같다.
문제는 인식하는 능력이다.
즉,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질을 스스로 알려면 대략 아래 6가지 질적 문답에 스스로 답하므로 가능할 것이다.

첫째 1. 주인정신으로 받기보다 나누어 주길 좋아하며 사느냐? ( )
2. 노예근성으로 받기를 좋아하고 사느냐? ( )
3. 기계근성으로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대가를 받고 사느냐? ( )

둘째 1. 창조정신으로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며 남이 하지 못한 일을 하며 사느냐? ( )
2. 모방정신으로 남이 한 것을 모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편하게 살기를 좋아하느냐? ( )
3. 파괴정신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과 자연을 파괴하길 좋아하며 사는냐? ( )

셋째 1. 만나는 모든 것을 사랑하려 노력하고 나와 남을 동시에 좋게 하면서 타고난 지혜가 있어 스스로 몸 건강을 해결하고 사느냐? ( )
2. 만나는 모든 것을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내 편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병을 남을 의지해 고치려 하느냐? ( )
3.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없고, 자신을 기계로 생각하며 병이 나면 의사에게 가 수술을 하거나, 빨리 고치기를 좋아하느냐? ( )

넷째 1. 나한테 생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로 생각하느냐? ( )
2. 그 원인을 때로는 남, 때로는 나로 생각하느냐? ( )
3. 모든 문제는 남에 의해 생긴 것으로 생각하느냐? ( )

다섯째 1. 시련과 고난을 만났을 때 성장의 기회로 사용하느냐? ( )
2. 시련과 고난을 어떻게든지 피하려고 노력하느냐? ( )
3. 좌절하고 실망하며 하던 일을 포기하느냐? ( )

여섯째 1.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 육체, 유전인자에 대하여 또한 생의 목표와 자신의 生과 死의 문제를 스스로 풀려고 깊이 생각하고 노력하느냐? ( )
2. 그런 것보다는 세상에 있는 것, 과학, 예술, 정치, 종교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남에게 배우며 연구하느냐? ( )
3. 돈에 관심을 갖고 돈 벌기 위한 방법으로 명예, 권세, 상술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느냐? ( )

이상 여섯가지 물음에 진솔하게 답을 해 보라!
그 답을 보면 자신이 질적 향상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양적인 것만 생각하고 사는지......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을 함께 생각하고 있다면 양적인 것은 몇%, 질적인 것은 몇%로 생각하고 사는지 알 게 될 것이다.
스스로 찾아낸 답이 바로 나의 현재이며 정확한 「나」의 실체이다.
그리고 내가 질적 성장을 위해 먼저 노력하고 다음에 양적 증대에 관심을 둔다면 이 우주안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오로지 양적 증대에만 관심을 갖고 있고, 질적향상은 시간 남을 때 하자고 생각하고 있으면 이미 그는 병이 나 악화되고 있는 상태이다.
질적 성장을 하면 자신 안에 있는 사랑하는 능력과 지혜를 개발하여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증대에 초점을 맞추어 살면 자신의 문제를 남의 지식이나 권력, 재물 그밖에 나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며 풀려하기 때문에 결국 질적 저하로 망하는 것이다.
나란, 인식하는 나 또는 眞我만 나라고 해도 안된다. 그렇다고 유전인자인 道를 나라고 해도 안되고 우주만 나라고 할 수도 없다.

나란, 결국 이 모두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리를 하면, 우주 안에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안에 태양계가 있고, 태양계 안에 지구가 있고, 지구안에 내가 있으며, 내 육체 속에 인식하는 내가 있는 것이며, 이 모두가 나라고 했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나의 과거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의 미래고, 이 모두를 합친 것이 바로 나의 현실이다. 따라서 나란, 지금 내가 느끼고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나」가 아닐까?



<참고> 1번은 질적 삶
3번은 양적 삶
2번은 질적 삶과 양적 삶 사이에서 양적으로 향한 삶
※1번이 하나만 있어도 희망적이다.(펌-백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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