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적 사랑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에너지의 고갈을 가져오며, 받는쪽의 나태함을 유발하여 자연은 하향한다. 따라서 생명의 창조적 성장과 진화의 입장에서 볼때는 생명은 역행성이고, 무차별성이 아닌 차별성이다. 차별화의 진행이 다양한 전개이고, 창조이다. 존재들의 무차별적 공통성을 찾아내는 것은 소중하지만, 만물에 대한 무차별적 사랑이란 우주자연의 일부 질서일수 있으나, 전부는 아니다. 한 개체는 모든 것을 사랑할만한 그만큼의 에너지가 없다. 상대성의 어떤 쏠림과 그 역작용은 차별적 불균형에 대한 역차별의 시차적 접근을 통한 삶의 균형적인 리듬인 것이지 그 중간의 무차별적 정지와 고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적 중간은 새로운 정지의 쏠림이므로 시들해지고 피곤해지는 엔트로피 증가이다. 그때는 새로운 움직임과 변화로의 역행성이 정지에 대한 쏠림의 치유법이 될 것이다. (요가는 차별과 무차별의 균형적 조화와 안정과 불안정의 조화를 가르친다.)

생명의 시작과 진행의 특징은 하나의 세포작용이고 세포막이다. 세포막은 세포내의 특수상황을 어느정도 유지시키는 능력을 갖고있다. 농도가 높은곳에서 농도가 낮은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현상인데, 그것에 반대하여 농도가 낮은곳에서 농도가 높은곳으로 물질을 이동시키는 위대한 역행적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이 생명의 기본구조인 세포막이다. 공기나 물이 그리고 햇빛과 냉온이 몸의 피부속으로 자연의 순행적 질서대로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자연성에 역행하는 능력도 세포막이 가지고 있다. 물론 순행의 능력도 있으나 역행의 능력이 생명력이다. 갈증은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하고 보충하려는 일종의 항거이고 몸의 작용이며, 몸의 욕망이 표현됨이다.

환경에 의타적 적응이 아니고, 환경을 자기에게 잘 적용시키는 힘과 자신의 구조적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작용이 생명력의 특징이다.(심신이 자연에 순행할 때 생긴 치우침이나, 역행하면서 생긴 심신의 치우침을 발견하여 그 반대적인 조건을 수련시켜 심신을 청결하게 하고, 있어야할 곳에 기관들이 있도록 질서를 회복시키는 노력이 요가수련이다. 심신의 치우침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의 능력이 시차를 두고는 다양한 심신작용이 실현될 수 있으나, 동시적으로 여러곳을 한꺼번에 갈수가 없고, 공간적응의 신체구조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켄윌버는 과학적 지식과 인류의 지혜를 통합적(Integral) 또는 전일적(Holistic) 접근을 하여「존재의 대연쇄」를 시도하고 있다. 존재의 물질(물리학), 몸(생리학), 마음(심리학), 혼(신학 Theology), 영혼(신비주의)를 통합시키고 있다. 그 통합적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는 말로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BC582~BC530) 학파가 제시했던 코스모스(Kosmos:우주질서, 신의본성, Khaos의 반대)를 1995년 새롭게 제시했다. 그리고 물질과 정신의 통합적 질서인 Kosmos 대신에 물질적 영역을 나타내는 코스모스(Cosmos:물질세계의 질서, Chaos의 반대)로 대체시키는 오류를 서구가 저질렀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심리학과 정신병리학의 발달이 늦어졌고, 진화에 대한 이해가 늦어졌다고 했다.

코스모스(Kosmos)는 존재와 인간의 물질영역(cosmos), 신체(생명영역), 마음(정신영역), 영혼(신적영역)의 모든 것이 통합된 본성의 우주질서를 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과학지식이 서로 만나는 통합을 강조한다.
과학에는 진리의 인식방법과 연구영역이 있다. 과학의 인식적 방법에는 가정, 실험, 확인, 지식획득의 인식절차가 쓰인다. 그동안 서구의 과학적 연구영역이 현상적인 물질수준에 머물면서 지혜와 과학이 만나기가 어려웠다. 과학의 경험적 명료성과 검증이란 것이 물질적인 것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며, 수학, 논리학, 심리학, 사회학, 신학 등이 비감각적, 비경험적, 비물질적, 형이상학적일지라도 과학적 인식방법과 같이 그 명료성과 검증이 가능하므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며, 지혜와 과학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Kosmos의 네얼굴(존재의 4차원)로 개체와 공통체의 내면과 외면을 들고있다. 인간의 물질, 몸, 마음, 혼, 영혼이 통합적(Integral), 전일적(Holistic)으로「존재의 대연쇄」를 이루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분류하면 개체와 공통체의 내면과 외면의 네가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존재의 개체적인 면과 공동체적인 면을 외면적 입장에서만 바라볼때는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면에 치우치게 되고 주관적 입장 즉, 내면적 입장을 놓치게 되어 모순이 생기고 실패하게 되며 그 반대의 경우도 같다. 한편 개체적 입장에서만 내면과 외면을 바라볼때도 공동체적 입장의 내면(무형적 문화)과 외면(유형적 사회구조)을 놓치는 모순과 실패가 된다. 따라서 우주질서(Kosmos)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여 진리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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