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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들이 공을 던지는 곳을 마운드라고 합니다. 언덕(마운드)이라는 표현을 쓴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그라운드(운동장)의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야구규칙에서는 마운드 높이를 약 25.4㎝~33㎝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른 손바닥으로 한 뼘 정도 높이입니다. 수치상으로는 "그 정도야∼"싶은데 실제로 마운드에 서보면 그 높이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네~'입니다. 또 요즘은 직장야구나 동네야구를 하는 분이 많아서 아시겠지만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의 거리(약 18.44m)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있는 힘껏 던져도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까지 선수들이 던지는 것처럼 직선(?)으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투수라고 가정해 보실까요. 자, 그라운드에서 툭 불거진 마운드에 서 있습니다. 잠실 또는 사직이나 문학구장의 만원 관중을 기준으로 할 때 6만여 개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관중들은 다른 야수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2-1로 앞선 9회말 마지막 수비. 2사 주자 만루. 상대는 4번 타자. 볼카운트 2-3. 아마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마운드에 서 있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투수출신인 김소식 대한야구협회 부회장은 "투수는 일부러라도 강한 자신감-어찌보면 오만하다 싶을 정도의-을 내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야수들에게 믿음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투수가 기가 꺾이면 그 경기는 보나마나 입니다. 최동원과 선동렬에게는 야수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그 어떤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타자쪽에서 보면 마운드에서의 위압감은 투구 자세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습니다. 최동원의 투구 동작을 떠올려 보실까요. 그는 선동렬보다는 작은 체격이었지만 왼발을 높이 차올리고 길게 내딛는가 하면 글러브를 낀 왼손을 안정시킨 가운데 오른팔을 크게 휘두르는 투구 동작을 구사했습니다. 수탉이 싸움에 들어가기 전에 털을 곧추 세워 자신의 몸을 크게 보이려 하는 것을 연상해 보면 어떨까요. 이번에는 선동렬의 투구 동작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그는 타고난 유연성을 활용해 윗몸을 최대한 포수 쪽으로 끌고 나와 공을 뿌렸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장 출신인 야구 해설가 김광철씨는 이와 같은 투구자세에 따라 공을 놓는 위치가 많게는 30㎝정도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포수쪽에서 본 선동렬의 그와 같은 투구 동작에서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떠올렸습니다. 이상적인 투구 자세를 지닌 오버핸드 투수는 공을 놓는 순간 오른쪽 무릎에 그라운드의 흙이 닿을 정도가 돼야 하고 가슴의 앞부분이 왼쪽 무릎에 닿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그 정도로 윗몸을 끌고 나와야 타자를 압도하는 공을 뿌릴 수 있습니다. 최동원과 선동렬의 위압적인 투구 동작과 견줘 보면 박찬호의 투구 동작은 왠지 얌전해 보입니다. 이는 아마도 퀵 모션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그리 된 것 같습니다. 견제 능력은 세 투수 모두 정상급 투수다운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자가 도루를 하게 되면 포수의 능력(어깨)을 거론하지만 투수 탓을 더 해야 옳은 일일 것입니다. 견제능력이 떨어지면 주자에게 긴 리드를 주게 되고 이는 도루성공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90피트(약 27m)의 누간거리에서 뜀박질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리드를 많이 하느냐가 도루 성공의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왼손잡이라는 이점이 있긴 했지만 1970년∼80년대 아마추어와 프로에 걸쳐 이름을 날린 이선희는 주자견제에 일가견을 가진 투수였습니다. 그 앞에 선 주자, 특히 1루 주자는 베이스에 거의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제5의 내야수로서의 수비능력도 세 투수 모두 뛰어납니다. 특히 선동렬은 투구 후 자세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수비자세로의 전환이 그 어느 투수보다 빨랐습니다. 이제 마지막 항목인 연투능력입니다. 현대야구에서는 필요 없는 요소이긴 합니다. 따라서 참고삼아 연투에 관련된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면서 최동원, 선동렬, 박찬호의 투수삼국지를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1978년 6월 4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는 대통령기전국대학야구대회 준결승 연세대-동아대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연세대 최동원과 동아대 임호균의 피나는 투수전 속에 연장 14회 0-0 일몰 일시정지경기가 됐고 이튿날인 5일 벌어진 계속경기 연장 18회 초가 돼서야 김봉연의 결승 솔로 홈런이 터져 연세대가 1-0으로 이겼습니다. 몇 시간의 휴식이 있었고 이어서 연세대-성균관대의 결승전이 펼쳐졌습니다. 물론 연세대의 선발투수는 또 최동원이었습니다. 연세대는 접전끝에 3-2로 이겨 우승 헹가래를 쳤습니다. 고인이 된 김동엽 당시 성균관대 감독은 마운드까지 걸어 나와 이틀 연속 던진 상대팀 에이스 최동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했습니다. 김 감독다운 멋진 제스처였습니다. 이틀에 걸쳐 27이닝에 투구 수 375개 12안타 33탈삼진 2실점의, 요즘의 투수 운용 방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투구내용이었습니다. 이 대회는 1회전에서 강호 한양대가 김성한이 호투한 동국대에 덜미를 잡히고, 고려대가 임호균이 호투한 동아대에 져 탈락하는 등 화제가 만발한 대회로 야구사에 남아 있습니다. '오리궁둥이' 김성한이 프로야구 원년 3할대 타율에 10승대 투수였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야구팬은 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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