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물(文物)은 다 중요하다. 19세기 동양의 근대화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철학, 사상, 문학 등 인문학적인 것이 문이라면 물질문명의 기초가 되는 과학기술은 물을 다룬다. 문물 양면에서 동양이 서양보다 앞선 때가 있었지만 나침반과 화약을, 그리고 금속활자를 먼저 발명했던 동양은 물보다 문을 앞세우면서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과학을 일으킨 서양에 뒤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물보다 문을 우위에 두는 전통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과학은 사고, 기억 등 소위 정신 활동도 물리, 화학적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아무튼 우리가 원자, 분자로 이루어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물은 우리의 숙명이고 물을 잘 관리해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物관리’ 잘해야 삶의질 향상-

격물치지로 돌아가서, 멀리 있으면 잘 알 수 없던 사람의 됨됨이가 가까이 대해 보면 잘 드러난다는 의미의 인격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격(格)은 가까이 마주 대한다는 뜻을 가진다. 물(物)은 질량이 있는 물질과 질량이 없는 빛을 통틀어서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일컫는다.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치지(致知)는 아는 것의 극치, 즉 대충 아는 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정확하고 자세히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격물치지는 사물을 놓고 최선의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은 남들이 적당히 보고 넘기는 일을 철저히 관찰하고 조사하는 데서 발전한다. 물을 끓이는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을 발명한 와트나 바람에 날려 온 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등 흥미로운 예는 무수히 많지만 나는 격물치지의 극치로 허블의 안드로메다 연구를 들고 싶다. 하늘의 별 중에는 금성이나 목성처럼 밝은 행성도 있고, 시리우스처럼 크고 밝은 별도 있지만 겨우 보일 정도로 멀리 있는 별들도 많다. 베텔기우스 같이 붉은 별도 있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보면 별 같기는 한데 구름처럼 퍼져 보이는 천체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 성운(星雲)이다. 20세기 초반에는 이미 우리가 속한 은하수는 수많은 별들의 집단인 것이 알려졌고, 자연스럽게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인 줄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안드로메다 성운도 물론 은하수에 들어있는 좀 별난 천체로 치부되었다.

1920년대 초에 허블은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안드로메다에 관심을 기울였다.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윌슨산의 100인치 망원경을 사용해서 장시간 빛을 모아 사진건판을 현상하는, 지금 눈으로 보면 원시적인 방식으로 몇 년 동안 끈기 있게 안드로메다를 조사하던 허블은 그 성운 안에서 은하수 크기의 10배 이상 거리에 있는 세페이드 변광성을 발견했다. 내 키는 2m가 안되기 때문에 20m 거리에 있는 어떤 물체가 내 몸의 일부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드로메다는 은하수의 일부가 아니고 또 하나의 은하인 것이 밝혀진 것이다.

-철저한 관찰·조사에서 시작-

우주의 두 번째 은하를 발견한 허블은 그 후 수년에 걸쳐 20여개의 은하를 더 찾아냈다. 윌슨산 꼭대기 천문대에서 외롭게 성운 하나하나와 맞대결한 결과이다. 이처럼 1920년대에 허블이 관찰한 은하들은 모두 1천만 광년 이내의 거리에 있는, 비교적 우리에게서 가까운 것들이었다. 그 후 채 한 세기가 지나가기 전 오늘날 인간은 약 1백억 광년 거리에 있는, 그러니까 허블이 1920년대에 보았던 은하들보다 1,000배나 멀리 있는 은하까지 보면서 우주의 기원과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까지도 파악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인문적인 의문의 답도 격물에서 얻어진다니 역시 격물은 치지의 출발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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