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말·타이밍의 결합, 연설엔 원칙보다 수단 담겨야”

정치 철학자 최상룡 교수가 말하는 ‘지도자의 언어’

최상연 기자 choisy@joongang.co.kr | 제232호 | 20110820 입력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A miracle doesn’t happen miraculously)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남긴 수많은 어록 가운데 지금까지 기억되는 명문장 중 하나다. 집권 첫해인 1998년 10월, DJ는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한국의 민주화를 그렇게 표현했다. 산업화는 물론 민주주의까지 이뤄낸 한국민의 자부심, 그를 위해 쏟아야 했던 땀과 노력을 몇 개의 단어로 압축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은 역사를 두려워할 줄 아는 용기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 거의 전원인 630여 명이 이 연설을 들었다. 아사히(朝日)신문 등이 1면 톱기사로 보도했고, “정치가의 언어란 이런 것”이라는 사설까지 나왔다. 당시 일본인의 80%가 DJ의 방일을 좋게 평가했던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 문장은 최상룡(사진) 고려대 교수가 만든 것이다. 최 교수는 98년 초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DJ의 신년사 작성에 관여했던 인연으로 일본 의회 연설문 작성에도 참여했다.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를 강연했고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냈던 그는 주일 대사도 역임했다. 지난해부터 일본 호세이(法政)대학에서 ‘정의론’과 ‘중용 사상’을 강의하고 있는 최 교수를 만나 ‘통치자의 언어’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신라호텔에서 이뤄졌다.

인사 실패는 정치 실패의 신호탄
-이명박 대통령이 8·15 연설에서 공생 발전의 어젠다를 제시했다. 대통령 경축사를 어떻게 보나.
“공생 발전은 지난해 이 대통령이 밝힌 공정 사회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인 듯하다. 공생 발전을 평가하기에 앞서 공정이란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공정 사회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이상 사회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이다. 누가, 어떤 식으로 공정 사회를 만드는 것이냐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 정책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리에 맴도는 공허한 얘기가 될 수 있다. 공생 발전도 마찬가지다. 공생 발전 어젠다가 단편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국민 통합의 화두가 되려면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을 등용하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정책보다 사람이 중요한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그 대통령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그가 가졌던 식견과 교양, 철학이 재임 기간 전체를 지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정’, 공생의 의미와 실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하는 새로운 어젠다가 힘 있게 관철되려면 그 분야에 탁월하게 식견 있는 분들을 발탁해 믿고 맡겨야 한다. 플라톤은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정의’라고 말했다. 삼봉 정도전은 ‘정치의 아름다움(政治之美)은 사람을 쓰는 데 있다’고 했는데 지금도 딱 맞는 얘기다.”

-말은 쉽지만 적재적소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는가.
“인사 실패는 정치 실패의 신호탄이다. 정치 실패를 막으려면 사람을 잘 써야 한다. 따라서 사람을 꿰뚫어 보는 판단 능력이야말로 지도자의 제1 자질이다. 물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그나마 판단하기 쉬운 방법은 누군가의 언행을 분석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따져 보는 것이다. 논어의 마지막 문장이 뭔지 아는가. 사람을 아는 것(知人)은 그 사람의 말을 아는 것(知言)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 양극화 해결책 제시했어야
-정치에서는 말이 왜 그리 중요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자원은 경제력·군사력·상징력이다. 쉽게 표현하면 돈과 칼과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돈과 칼은 시스템으로 해결된다. 그럼 말만 남는다. 정치 지도자는 말을 통해 정치를 한다. 정치의 목적은 공자가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표현했듯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정의란 올바른 판단이다. 그런데 가장 올바르고 사려 깊은 판단은 언제나 언어로 표현된다. 정치 판단이 정치 언어를 통해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정치는 사실상 타이밍과 말의 결합이다. 정치가 바로 언어인 것이다. 서양엔 ‘침묵이 금’이란 격언이 있다. 최근 공개된 서신에서 악성 베토벤은 ‘타이밍에 맞는 침묵은 순금’이라고 표현했다. 맞는 얘기다.”

-좋은 정치 언어나 연설의 조건은 무엇인가.
“가장 경계해야 할 건 지도자의 흐트러진 말이다. 반대로 국민의 뜻을 모으는 지도자의 힘 있는 말은 더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그걸 지적하는 표현은 역사적으로도 많다. 예를 들어 정곡(正鵠)을 찌른다는 맹자의 표현이 있다. 가장 적합한 말의 힘을 강조한 것이다. 또 정약용은 시중지의(時中之義)라고 말했다. 천하의 만사와 만물이 의에 맞으면 행하고 의에 어긋나면 멈추라는 것이다. 일언상방(一言喪邦)이란 말이 있고 인(<8A12>)이란 단어도 있다. 일언상방이란 지도자의 말실수는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을 담았다. 인(<8A12>)이란 그러니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다. 정치 언어가 성숙해지려면 원리나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얘기해야 한다. 가장 미숙한 정치 언어가 원리와 원칙, 교과서적 표현을 되뇌는 것이다. 요즘 복지논쟁이 뜨거운데, 복지라는 단어를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치 지도자라면 그것을 실현할 수단을 내놔야 한다.”

-대통령 연설이 갖춰야 할 요소는 뭘까.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정의사회 구현’이란 표현이 있었다. 좋은 얘기다. 하지만 원리적·원칙적·교과서적 표현이다 보니 좋은 가치가 풍화됐다. 대통령의 말은 무엇보다 국민 통합의 언어가 돼야 한다. 동시에 실천 가능한 프로그램을 담은 언어여야 한다. 공동체 문제의 최우선 순위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우리 시대의 최우선 해결 과제가 양극화 문제라고 본다. 여야와 정부, 대다수 국민이 이런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최고 지도자로의 해답이 나와야 한다.”

-MB가 8·15 기념사에서 공생 발전을 제시하지 않았나.
“후속타가 없지 않나. 원리적 주장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해답을 내놨어야 한다. 공정과 공생 발전은 좋은 말이다.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 문제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준비 없이 말로만 먼저 띄우다 보니 경축사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간 영혼을 움직이는 게 통치술
-과거 통치자의 언어는 어땠나.
“고대 그리스에선 언어의 적절성이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했다. 고대 중국에선 군자중용(君子中庸) 또는 군자시중(君子時中)이란 말이 있었다. 세종대왕과 정조도 중용과 권도(權道)의 정치를 강조했다. 여기서 권(權)은 권세나 권력이 아닌 저울, 균형(均衡, 權衡)의 의미다. 정의와 중용은 극단을 배제한 중간 영역에서의 최적의 판단이란 점에서 유사하다. 최근 정치학에서 거론되는 리더십의 핵심 개념은 ‘역설적 중용’이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좌파로 출발했지만 현실의 중용적 정책을 많이 받아들여 실행했다. ‘타협의 역동성’을 보여준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인정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협은 통합으로 가는 예술이다. 타협의 과정에 중요한 게 절제의 언어, 중용의 언어다. 갈등을 푸는 과정엔 이성적 설득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한 속 깊은 감성의 언어가 더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꼽을 수 있는 명연설엔 어떤 감동이 있을까.
“로마 키케로의 웅변엔 이성의 번뜩임이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링컨의 정의는 간결성이 돋보인다. 킹 목사의 꿈에 대한 웅변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간절한 기도와 같다. 이들 명연설엔 공통적으로 진정성과 콘텐트가 돋보인다. 통치술(statecraft)의 핵심은 인간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술(soul-craft)이 돼야 한다.”

-정치가 달성하려는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은 100만 부 이상 팔렸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샌델이 말하는 정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샌델은 정의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지도 않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선을 정의로 끄집어내고 있다. 타인의 선(other’s good)에 대한 배려다. 자유주의와 공리주의만으로는 공동체가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가장 혜택을 적게 받는 사람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가 정의라고 규정한 사람은 존 롤스다. 남을 생각하는 게 정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다. 정치적 정의로서의 공정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는 어떤 모습일까.
“정치 지도자는 공공적 헌신이 몸에 배어야 한다. 다시 말해 뭔가를 주는 사람이다(A leader is a giver). 정치의 정의가 공동선(共同善)이니 정치 지도자는 무엇보다 타인, 우리, 사회, 국가의 선에 대한 배려가 남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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