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옛 전자(篆字=가림토 문자)를 실용화"
- 배달국 신지현덕이 만든 녹도문자,한글.한자 등 세계문자의 기원이 되었다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2011-10-08 오후 03:02:33
독일 함부르크대의 한국학자 베르너 잣세는 한글의 과학성을 실용성과 연관시켜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전한다.

“처음 볼 때는 한글이 어렵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배워 보니까 하루 만에 익힐 수 있었다. 특히 한글 글자 모양이 입 모양이나 발음 모양을 본 떠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열 살도 안 된 우리 아이들도 취미로 한글을 금세 깨우치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비밀 편지를 쓸 때 한글을 쓴다. 독일어를 한글로 적는 것이다. 그 만큼 한글은 쉽게 익혀서 쓸 수 있는 글자다.”

세계인이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익혀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은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문자로 세계 최고의 문자라 할 수 있으며, 장차 세계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공용어가 될 것이다. K-POP한류열풍과 더불어 세계 젊은이들이 한글배우기에 폭 빠진 것이 그러한 징조다. 김대중정부가 추진한 한류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는 힌류문화의 힘은 이렇게 한국의 세계화에 공헌하고 있다.

한글, 한국인이면 누구나 세종임금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배달국 시대부터 문자를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는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고인돌 자체가 세계 피라미드문명의 원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도 그리 많지 않다. 그 만큼 민족사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상황이다.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바로 서려면 우리의 민족사부터 바로 교육하는 일이 그 만큼 중요하다.





세종 28년(1446) 창제된 훈민정음의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백성들과 소통하는 국가운영으로 홍익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세종임금과 집현전 학자들이 옛 문자 가림토 문자들을 토대로 밤낮 연구하여 실용화한 한글의 창제 원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혹자는 창호지를 보고 모양을 본땄다고 하고, 혹자는 산스크리스트어에서, 혹자는 몽고의 파스파문자를 참고하여 글자모양을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이처럼 흥미로운 가설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처음 문자의 모양을 생각해 낸 계기만을 추측한 것일 뿐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한글의 제자 원리를 글로 분명하게 밝혀,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모음은 세계의 근간인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본땄다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다.

한글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점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뜬 글자 모양이다. 우주의 시작이건, 만물의 시작이건, 도량의 시작이건 간에 그 근간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알파벳은 각 글자가 어떤 연유로 생겼고, 또 글자 체계의 구성 원리가 불분명하다. 그 어느 문자도 한글처럼 명징하고 확실한 제자(製字) 원리를 제시하는 문자가 없다. 발음기관은 음성이 나는 원천으로서 ‘최초’의 논리성과 물리적인 근거를 확실하게 부여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이를 어떻게 명시했는지 보자.

“어금닛소리 글자인 ㄱ은 혀의 안쪽이 목구멍을 닫는 모양을 본떴다.”
“혓소리 글자인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떴다.”
“입술소리 글자인 ㅁ은 입의 모양을 본떴다.”
“잇소리 글자인 ㅅ은 이의 모양을 본떴다.”
“목청소리 글자인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여기서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청소리 이 다섯 소리가 입에서 나는 모든 자음 소리의 기본이다. 이 다섯 글자꼴 중 어금닛소리 ㄱ과 ㄴ은 입 속 혀의 작용을 본뜬 것이고,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청소리 ㅇ은 각각 발음을 내는 입술, 치아, 목구멍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한편으로 이 5개 음이 모든 소리의 기본이 된다고 하여 전통적인 5행(五行)사상을 반영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전의 그 어느 문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학성의 근간이다. 물론 다른 언어권에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화기 발명으로 유명한 벨의 아버지 알렉산더 멜빌 벨(1819~1905)이 19세기 후반에 농아를 위한 문자로 발음기관을 본뜬 문자를 고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대체 문자일 뿐, 온전한 문자는 아니다.

자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이라는 물리적인 실체에 근거했다면 모음 창제에는 우리의 전통 과학 사유가 오롯이 녹아 있다. 예부터 한민족은 숫자 3을 중히 여겼으며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도 하늘, 땅, 인간으로 구분했다. 세종은 한글의 모음 글꼴에 세계의 3요소를 그대로 담았다. ‘·(아래아)’는 둥근 하늘의 모습을, ‘-’는 평편한 땅의 모습을, ‘ㅣ’는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각각 본떴다.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속에서 인간이 대지에 발을 딛고 생장한다는 이치를 담아 이들이 조화롭게 엮인 모음 11글자가 만들어 졌다.

아주 간단한 듯 보이지만 천지인(天·地·人) 3요소를 조합한 모음 글꼴은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한 사물의 형상이 아닌 추상적인 우주관을 글꼴에 표현해 문자가 세계를 이루는 원리임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뿌리없이 나무가 존재할 수 없고 열매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 篆字를 모방하고"라는 1443년(세종25) 12월조 《조선왕조실록》의 기사가 증명하듯이 한글하면 세종대왕 한 사람이 만든 것 처럼 알면 안 되고 그 기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글이전에 단군조선시대의 가림토 문자가 있었고, 가림토 문자이전에는 배달국 시대 녹도문자가 있었다.





이 녹도문자는 백두산에서 배달국을 개국하신 제1대 거발환 환웅임금께서 신지(神誌) 혁덕씨(赫德氏)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매, 사슴발자국으로 만든 문자이고, 이 녹도문자는 이후 한자와 한글의 기원이 된 것이고, 페니키아 문자=알파벳 등 세계 문자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빛은 동방에서!" 대한민국을 문화민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증자료]배달국 녹도문자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세계최초의 문자이다. [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에는 사슴 발자국의 흔적(痕迹)을 보고 만들었기 때문에 녹도문자라고 부른 그 창제경위(創製經緯)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詳細)하고도 분명(分明)하게 적혀 있기까지 하다.


"환웅천황(桓雄天皇)은 신지 현덕에게 명(命)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대저 신지씨는 세세토록 명령(命令)을 전하는 직책(職責)을 맡고 출납헌체(出納獻替)의 임무(任務)을 전담하고 있었는데 다만 목소리에 의존(依存)했을 뿐 일찍이 문자(文字)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方法)은 없었다. 어느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에 나갔는데 갑자기 뛰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으나 둘러 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蹤迹)을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搜索)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發見)했는데, 어지러이 흐트러져 연결(連結)되었으나 향한 곳은 절로 확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沈黙)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기록(記錄)으로 남기는 법은 다만 이것뿐이라. 기록(記錄)에 남기는 방법(方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 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萬物)의 모양(模樣)을 관찰(觀察)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문자(太古文字)의 시작이라 한다. "(환단고기 신시본기 제3편)



바위에 새겨진 배달국 녹도문자



동북지역에서 남하한 단군족(은나라)이 거북등에 새긴 상형 갑골문자=중동의 슈메르 문자양식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서는 세종임금과 집현전 학자들이 실용적으로 재창조한 한글의 기원이 되는 옛 전자 가림토문재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한다. 3세 단군 가륵단군 때의 기록이다.


"경자 2년(BC 2181년), 아직 풍속이 같지 않아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배달국 녹도문자)이 있었으나,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아래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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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오후 03:02:33 © kookm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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