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만(참나)은 동(動)과 정(靜)을하고 가까이 있기와 멀리있기를 하며, 이 세상 안과 밖에서 존재한다.'

: 멸하는 것과 영원히 멸하지 않는 두 개의 길을 함께 병행하여

죽음을 건너고 불멸을 얻는 것이 참나를 깨닫는 자이다.

'자연의 변화, 조건에서 볼 때는 만물이 서로 다른 차별로 파악될 수 있으므로

그 토대로 본 자신은 다른 것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는 다른 것들과 경쟁적이고 비교적이며, 감각적이고 개별적이다.

따라서 이기적인 성향이 높은 편협한 자신(겉나)이 된다.

그러나 만물의 본성이 차별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공통적인 요소가 차별적 요소보다 더 많다.

시간의 제약이 없이 언제나 있는 원리가 생명의 창조적 성장이다.

태어난 목적을 가지고 살고 죽는 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그러한 불변의 법칙을 토대로 바라본 자신을 상캬적 입장에서 속나 또는 참나(atman)라 한다.

참나를 깨달아 차별과 무차별의 조화, 변화와 불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잘 사는 지혜의 길이다.

나는 변화하여 소멸하는 물질적 육체와 그 삶의 결실이 영원하여

불변하고 영원히 살아있는 정신(삶의 이치)의 두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개체간의 차이는 개체간의 무차별을 깨닫게 하는 기초 단계의 것이고,

개체간의 무차별은 차별로 나아가는 자유로운 창조적 성장을 이끌어주는 우주의 법칙이다.

즉, 상대성을 통해서만 절대성에 이를 수 있고, 절대성의 틀 안에서 상대성의 변화가 허용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를 무시하면 병리현상의 문제가 발생하여, 다른 하나의 가치도 소멸된다.

겉나는 멸할 것이나 속나는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 속나(참나)는 영생이다.

창조주는 멸할 것과 불멸할 것을 하나로 묶어(요가) 이 우주를 전개시켰다 고 보는 것이

요가 철학의 관(Dharsana)이다.

이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사람들의 소원을 이미 이 세상의 원리로 모두 다 주었으니,

좀더 특별히 얻고자 요구하지 말고, 게으른 태도나 의지하려는 태도를 벗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연의 변화적 진리와 불변적 진리를 탐구하고 이해하여 스스로가 그러한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므로써,

자신도 창조적 성장과 변화를 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해서도 잘 되어지도록 도우라는 것이 요가정신이고 스스로의 정신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개발이 자신의 자유이고 기쁨이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실현해 감이다.

이세상의 오묘한 진리를 맛봄으로써 창조주의 신성함과 놀라운 조화성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것은

요가정신에서도 인정하지만 신에게 자기만의 특별한 사랑을 기대하는 기복적인 신앙은 멀리한다.

그것은 신이 베풀어놓은 이 세상의 원리를 스스로 깨달아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것이 요가사상이란 뜻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개체간에 서로 돕고 살리는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서로 꼭 맞추기(요가)를 수련할 때 신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베풀어준 자연의 조건들을 소홀히 하면서 또다른 특혜를 요구한다면,

신성한 자연의 원리를 거부한 것이 되어 신의 본 뜻을 저버린 것이 되므로,

신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참 바른 견해가 요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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