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의 겁 없는 도전…‘그래미’도 놀랐다
“비욘세와 티나 터너가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더군요. 랑랑과 허비 행콕이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편곡해 함께 피아노를 치고요. 토니 베네트, 프린스가 무대에 등장해요….” 지난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제 50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상을 수상(문화일보 2월12일자 26면 참조), 문화일보 ‘금주의 인물’로 선정된 사운드미러 한국지사 황병준(41) 대표가 15일 문화일보를 방문했다. 14일 밤 귀국한 그는 아직도 감동이 가시지 않은 듯 수상 당시를 회상하며 빠른 속도로 말을 이었다.

“70세가 다 된 티나 터너가 젊은 비욘세에게 전혀 뒤지지 않고 춤까지 추며 노래하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몇 년에 한 번 무대에서 보기도 어려운 사람들을 한꺼번에 한 무대에서 보니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미가 대단하기는 대단합니다.”

황 대표가 녹음한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그레챠니노프의 아카펠라 합창음악 앨범 ‘수난주간’(샨도스 레코드)은 올해 그래미상에서 클래식 최우수 음반상, 최우수 녹음기술상, 최우수 서라운드음향상, 클래식 올해의 프로듀서상, 최우수 합창연주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문화일보 1월30일자 35면 참조)

“솔직히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두세 개는 건질 줄 알았는데 최우수 녹음기술상 밖에 타지 못해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친구들이 ‘후보에 많이 올라도 상 하나 타기가 힘들다’며 ‘하나만 타도 굉장한 것이고,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말해 좀 위로가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음반을 제치고 수상한 앨범이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단체 ‘시르크 뒤 솔레이으’에서 제작한 비틀스 앨범 ‘러브’인데다가, 세계 최정상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한 ‘독일 레퀴엠’ 음반이 최우수 합창상을 탔으니 이들과 막판까지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상식에서 최고의 화제는 저희 팀이었습니다. 저희 음반이 호명됐을 때 합창단 50명, 녹음 스태프 10명 등이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질러 모두 놀랐지요. 보통 1개 앨범에 많아야 10명 정도 참석하는데 저희는 이례적이었거든요. 이날 미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가 최우수 낭독앨범상을 받은 것 이상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오바마는 이날 빌 클린턴과 지미 카터와의 경쟁을 뚫고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오바마에게는 두 번째 그래미상 수상이라고 황 대표는 덧붙였다.

황 대표는 “사실 이 앨범은 자칫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고 비화를 털어놨다.

“요즘 앨범사가 녹음하자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자비를 들여 녹음한 것을 가져오면 음악성을 검토하지요. 그런데 이 앨범을 사운드미러에 가져왔을 때 캔사스시티합창단이나 피닉스바흐 코랄이 유명한 합창단도 아닌 데다 레퍼토리도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가 아니잖아요. 이미 다른 합창단이 녹음한 같은 레퍼토리 앨범이 우리한테 있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것을 몇 개 녹음해봤는데 성적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내게 됐는데 5개 부문 후보에 오를 줄은 미처 몰랐지요.”

그는 이제 한국 최고의 녹음 엔지니어가 됐다. 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사, 석사를 마치고 27살에 미국 유학을 가 음악녹음으로 전공을 바꾸는 ‘도박’이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부모님께는 좋은 기술을 배우겠다고만 했습니다. 음악인 줄은 모르셨어요.”

음악녹음은 음악도 알고 녹음과 관련된 공학도 알아야 한다. 공학은 되는 데 음악은 되지 않았던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3 때, 재수할 때보다 10배는 더 했을 거예요. 대위법, 화성학, 청음에 연주까지 음대에서 하는 공부를 모두 해야 해요. 녹음 실습도 해야 하고, 녹음 아르바이트도 해야죠. 1주일을 통틀어 10시간도 못 잔 적도 있어요. 그래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였기 때문이죠.”

1주일간 피아노를 하루에 20시간 이상 친 적도 있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빠르게 건반을 치는 스케일링을 하루 종일 하도 열심히 해 팬티 양쪽이 닳아 구멍이 10여개나 뚫린 것을 나중에 발견,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웃은 적도 있다고 그는 회고했다.

“더 어려웠던 것은 실습이에요. 경력이 없으면 인정해주지 않거든요. 그런데 여기 전문가들이 한국 사람을 인정하기나 하나요.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사운드미러에 갔는데 제가 좋아하던 앨범은 거의 모두 여기서 녹음됐더군요. 그저 쫓아내지만 말아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돈도 필요 없고, 청소만 해도 좋다고 매달렸습니다. 제 정성이 갸륵했는지 받아는 줬는데 정말 한 달 동안 아는 척도 안 하더군요. 뭘 좀 시켜줬으면 좋겠는데 인사도 안 받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매달려 공부했습니다.”

한 달쯤 지난 뒤 녹음하는 데를 데려가 간단한 일을 시켰다. 그는 옆에서 보고 있다가 점심시간에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뒤 피아노의 위치와 마이크의 위치, 녹음기계의 기능을 꼼꼼히 노트, 화장실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복기하고 공부했다고 했다.

“머리 좋은 놈이 열심히 하는 놈 못 당하고, 열심히 하는 놈이 좋아서 하는 놈 못 당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그제야 저를 써줬고, 그렇게 열심히 배운 것이 지금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시작입니다. 한국의 음악, 소리를 가지고 그래미에 도전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상과 관련, “문화일보가 나의 그래미상 후보에서부터 수상까지 정말 따듯하게 소개해 요즘 방송과 신문, 잡지 등에서 인터뷰가 쇄도한다”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의 부인 전혜경씨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정치학과를 나와 유럽유엔본부를 거쳐 현재 유니세프 도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글 =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사진 =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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