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실핏줄까지 뚜렷하게 본다, 안개 걷혀가는 뇌의 신비

2010년 03월 15일 (월) 03:42 중앙일보


[중앙일보 황운하] 지난 10일 오전 8시30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신경외과 장진우 교수팀이 5년간 파킨슨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기영(가명·60·남)씨의 MRI(자기공명영상촬영)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이씨에겐 곧 뇌 특정 부위에 전기자극기(전극)가 이식된다. 비정상적인 뇌 신호를 차단해 심한 손떨림과 보행장애를 제어하는 시술이다. 이른바 뇌심부자극술(DBS). 시술은 매우 정교하게 진행된다. MRI가 보여주는 영상을 바탕으로 시상하핵(행동·인지 기능 담당)의 위치를 파악한 뒤 두개골에 두 개의 구멍을 낸다. 그리고 뇌의 미세혈관을 건드리지 않고 전극(직경 1.27㎜)을 이식한다. 전극은 뇌 속에 그물처럼 뻗어 있는 혈관을 손상시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시상하핵에 앉혀졌다. 이 같은 시술은 뇌 속을 손금 보듯 하는 영상진단기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성역에 갇혀 있던 뇌가 의료 영상진단기기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다. MRI·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등 최첨단 영상기기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살아 있는 사람의 뇌 구조를 속속들이 들춰내고 있다. 첨단영상장비의 개발은 곧 환자에 적용하는 임상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진단이 정확해짐에 따라 질병 판독이 용이해지고, 수술성적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뇌 영상의학이 뇌질환의 진단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한국뇌학회·한국뇌신경과학회는 이달 13일부터 20일까지 뇌주간 행사를 펼친다. 일반인을 위한 뇌의 신비에 대한 공개강좌도 개최한다.(참조 www.brainsociety.org)

뇌 전기자극으로 파킨슨병 증상 크게 완화

지난달 26일 서울 신라호텔에선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뇌영상 분야에선 한 획을 그은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소장 조장희)가 7.0테슬라 MRI로 구현한 뇌영상을 책(『7.0 Tesla MRI Atlas』)으로 선보인 날이기 때문이다. 7.0테슬라(Tesla, 자장의 단위)는 지구 자기장의 35만 배에 해당한다. 현재 상용화된 1.5 또는 3.0테슬라 MRI에서 구현되는 1㎜의 해상도를 0.3㎜까지 낮췄다. 척수의 신경로·해마·흑색질 등 뇌의 각 기관은 물론 거미줄 같은 핏줄과 신경까지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시대를 연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뇌사진이라는 것. 정밀한 뇌영상은 뇌혈관질환이나 뇌종양 환자 등에게 직접 사용됨으로써 진가를 발휘한다.

고해상도 MRI가 뇌의 형태를 지도처럼 정밀하게 보여준다면, 뇌 전용 PET인 HRRT-PET와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는 뇌의 기능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HRRT-PET는 세계적으로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를 포함해 두 곳만 보유하고 있다. 이 기기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 변화에 따른 뇌의 다양한 반응을 영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영상의학의 발전으로 뇌질환 치료는 앞으로 훨씬 정밀해지고, 정확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1주일 뒤 퇴원하는 이씨도 이 같은 영상 의학의 도움으로 파킨슨병 증상이 80% 줄어든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감마나이프 등 뇌 수술 정확성 높여

걸프전에서 500㎞ 이상 떨어진 목표물을 오차 없이 정확히 타격하는 미국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뇌 수술에서도 이처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시술이 가능할까. 고해상도 뇌 영상은 뇌심부자극술·감마나이프·뇌 내시경 수술 등 고도의 정확성이 요구되는 뇌 시술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기인 감마나이프는 방사성동위원소에서 방출되는 감마선을 쪼여 암 덩어리의 성장을 막거나 소멸시킨다. 이때 감마선이 정상 뇌세포에 영향을 주면 인지장애나 행동장애라는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외과 이정일 교수는 “시술 전 MRI 영상으로 뇌의 질병 부위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으면 감마선을 쪼여야 할 좌표를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 내시경 치료도 영상의학의 혜택을 받는 분야. 뇌실의 종양 등을 제거하는 데 적용된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 신경외과 김승기 교수는 “고해상도 영상을 통해 세밀하게 뇌를 볼 수 있는 것은 수술 목표물을 찾아가고, 수술 후 회복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혈관성 치매, 발생 10년 전부터 관찰 가능

뇌 영상의학의 발전은 뇌졸중·치매 등 주요 뇌 신경계질환의 예방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해상도 MRI를 이용해 기억력 장애인 치매와 연관 있는 뇌 속의 ‘해마’가 찌그러져 있는 것을 선명하게 관찰하고, 뇌졸중 환자의 시상핵 부위의 천공동맥(터지면 뇌졸중을 일으키는 아주 가는 혈관)이 막혀 있는 모습의 영상화가 가능해진 것.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박사는 “눈으로 살아 있는 뇌를 보는 시대가 도래하면 치매 등 뇌 질환이 발생하기 10년 전부터 관찰해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과학연구소가 연구용으로 운영 중인 7.0테슬라 MRI는 5년 뒤쯤이면 상용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조장희 박사는 “뇌의 구조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MRI와 뇌 기능을 관찰하는 HRRT-PET의 기능을 융합하면 뇌 질환이 발생하는 정확한 부위와 기능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현재 뇌과학연구소는 세계 처음으로 두 기계를 결합한 ‘HRRT-PET-7.0테슬라 MRI 퓨전 시스템’을 개발해 다양한 질환에 적용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완성되면 치매·파킨슨병·뇌졸중 등 뇌 질환의 조기검진과 치료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또 마음의 병으로 불리는 정신분열증·우울증·자폐증·인격장애 등 뇌신경 이상으로 나타나는 질병 치료에도 새로운 문이 열린다.

뇌 영상 혁명은 뇌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신약개발의 가능성에도 불을 지핀다. 조 박사는 “우울증 환자 중 치료제 복용 후 약효가 바로 확인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1~2주일 뒤에 나타나거나 아예 효과를 못 보는 사람이 있다”며 “뇌 영상과학을 활용하면 약물 성분이 어디에 작용했는지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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